Writer : David R. Howell
Year : 2018
문화유산 중에서도 무형문화유산은 특히 취약하고 변화하기 쉽다. 살아있는 존재에 있어 진화는 불가피하지만, 전통이 애초에 그것을 고유한 것으로 만든 기준을 벗어나 진화해야 하는 지점은 과연 어디일까? 본 논문은 웨일스 지역의 전통인 마리 루이드(Mari Lwyd)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말의 머리를 중심으로 한 웨일스의 계절 전통인 마리 루이드는 저항적이고 오랜 시간 동안 살아남은 유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흔히 ‘고대 전통’의 연장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정당성에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본 논문은 오늘날 웨일스에서 나타나는 현대의 마리 루이드를 역사적으로 기록된 마리 루이더와는 다른, 독특한 독립체로 제시한다. 많은 관점에서 오늘날의 마리 루이드는 등장한 지 수십 년 밖에 되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무형문화유산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마리 루이드의 역사적 변종이 독특한 현대판 마리 루이드로 어떻게 진화했는지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이해함으로써 무형문화유산 항목들이 애초에 그것을 고유하고 중요한 것으로 만들었던 요소들의 한계를 넘어 변형되고 조작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3년 UNESCO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이 도입된 이래로, 취약하며 살아있는 생명체과 같은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점차 확대되었다. 특히 영국 정부에서는 무형문화유산의 유형에 대한 일부 중요한 정치적 반발이 존재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강조는 더욱 강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2개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목록에는 매년 항목들이 추가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무형문화유산 보호에 대한 인식과 참여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2003년 협약은 무형문화유산의 '보호(safeguarding)'라는 이상을 명백히 강조하고 있다. 이는 전통을 보호(protect)하지만 그 자연적 진화와 성장을 가로막지 않는 적극적인 보존의 형태로 볼 수 있다. '보호'는 문화적 전통이 활발하고 역동적인 존재임을 인정한다. 또한 발전은 차치하고라도, 문화적 전통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그 성격과 형태가 변화할 것이라고 반드시 예상해야 한다. 많은 경우, 문화적 전통의 적응과 진화는 지역 사회와 참가자가 경제 환경 및 인구 변화 등의 요소에 적응하는 유기적 과정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형문화유산이 자연적 진화라고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외부 세력에 의해 변질된 것으로 볼 수 있는 주목할만한 사례들도 존재한다.
비유기적 문화 변화의 사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발리 전통 무용의 사례이다. 타 연구자들이 이미 이 사례를 폭넓게 다루었지만,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바로 발리에서 전통 무용으로 간주되는 것의 성격, 형태, 내용이 관광객들의 요구와 특정 무용에 대한 선호에 따라 대폭적이고 급속하게 변화했다는 사실이다. 발리의 경우에는 무형문화유산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화했으며, 심지어 손상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상업적 시장의 요구를 만족하기 위해 문화유산의 무형적 가치가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는 이례적인 것이 아니다. 문화적 전통의 보호에 참여하는 연행자가 지속적으로 직면하는 도전과제는, 외부의 비 전통적 수용자(audience)와 소비자를 자극하여 압력을 가하는 상황을 피하면서도 전통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외부의 수용자와 소비자를 자극하면 문화유산의 형태가 돌이킬 수 없게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웨일스에서는 무형문화유산의 사례들이 공식적인 형태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웨일스가 10년이 넘도록 정치적 분권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형문화유산 협약 비준 등 유네스코 관련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은 런던 웨스트민스터에 소재한 영국 정부의 고유 영역으로 남아 있다. 영국의 무형문화유산에 애호가들에게는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영국 정부는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 부족을 드러냈다. 또한 영국에서 만들어진 유산과 비교하여 그러한 문화적 자원에 우선순위를 두려 하지 않았다.
영국 전역에서 무형문화유산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무형문화유산이 영국 내 세계문화유산 등과 비교하여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영국에서는 무형문화유산의 보호를 위한 홍보, 재정 지원, 구조적·국가적 접근방식이 부재한 상태이다. 그러나 분권 정치 구조 하에서 특히 스코틀랜드가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이 사안이 보다 주목을 받고 있다. 에딘버러 네이피어대학(Edinburgh Napier University)은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 of Scotland)과 파트너십을 체결하여, 스코틀랜드에 존재하는 무형문화유산 사례의 목록을 기록보존소에 보관했다. 또한 스코틀랜드 정부는 무형문화유산 관련 참여에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하며, 이를 위한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북아일랜드와 웨일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웨일스에서는 낙관적인 관점을 가질만한 몇 가지 주목할만한 사례가 있다.
웨일스는 대표적으로는 매년 개최되는 '내셔널 이스테드버드(National Eisteddfod)' 관련 활동 등 무형문화유산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원이 풍부하다. 국가가 후원하는 주요 문화 축제와는 별개로 몇 가지 타당한 사례가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마리 루이드(Mari Lwyd)'는 견고한 웨일스의 무형문화유산으로 볼 수 있다. 아래에 상세하게 설명했지만, 마리 루이드는 장식된 말의 두개골을 중심으로 하여 시 낭송 경쟁을 하는 '푼코(pwnco)' 전통이다. 웨일스에서는 정확한 확인 없이 마리 루이드를 '고대부터 내려온 전통'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지만, 자료에 의하면 마리 루이드는 빨라야 19세기에 시작된 전통으로 보는 것이 정확한 듯하다. 또한 마리 루이드는 지속적인 부활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연례 문화행사에서 거의 사라지다시피했던 마리 루이드의 전통을 이제는 웨일스 전역에서 만날 수 있으며, 잉글랜드, 유럽, 북미에서도 그 변종이 나타나고 있다.
표면상으로 보면 웨일스의 마리 루이드는 무형문화유산이 지속되는 긍정적인 사례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마리 루이드의 사례 중 (전부는 아닐지라도) 다수가 마리 루이드를 무형문화유산으로 만드는 요소들을 더 이상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본 논문은 오늘날 웨일스에서 볼 수 있는 마리 루이드의 사례 중 대다수는 '고대 전통'을 기념하고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활동 형태의 표현이라는 주장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마리 루이드가 타당한 무형문화유산 유형으로서 유효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무형문화유산인 마리 루이드의 두 가지 형태가 웨일스의 문화 경관에 존재한다는 관점을 제시하며, 둘 중 최근의 사례는 지난 10-20년 사이에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하고자 한다. [사진 1]
이미 명확하게 확립되어 있는 마리 루이드에 관한 설명을 다시 언급하는 것은 본 논문이 의도하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비교를 위해, 보다 자세한 역사적 설명을 아래에 제시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통적 마리 루이드는 장식된 말의 두개골을 핵심 요소로 한다. 흰색 숄로 덮어 종과 리본으로 장식한 마리(Mari)를 주로 남성이 머리에 쓰거나 들고, 집집마다 또는 오늘날에는 술집마다 방문하며 동네 전체를 돌아다닌다. 또한 군인, 펀치와 주디(Punch and Judy) 등 판토마임과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소수의 남성들이 마리와 동행한다. 반대 성별이 입는 옷을 착용하는 크로스드레싱(cross dressing) 역시 늘 등장하는 요소이다. 이 '의식(ceremony)'에는 경쟁적으로 노래를 부르거나 시를 낭송하는 '푼코'가 수반된다. 이렇게 한쪽이 시를 낭송하면 다른 쪽이 답시를 읊는 독특하나 형태는 웨일스에서 시와 음유 시가의 전통이 폭넓은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웨일스 외부에도 마리 루이드의 변종이 존재하지만, '마리 루이드'라는 용어 자체는 역사적으로 웨일스에만 한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전통의 요소들은 최근 수년간 많은 도전을 받았다.
2016년 1월 월텀스토우(Walthamstow)에서 기록된 마리 루이드 사례 중 가장 놀라운 것이라 할 만한 사례가 발견되었다. 런던의 자치구인 월텀스토우는 마리 루이드와 관련된 전통적 지역, 즉 사우스 웨일스(South Wales)의 계곡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다. 또한 문화지리학 관점에서 런던 내에서도 독특하게 분리된 곳이기도 하다. 현재 런던에서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대규모 이민으로 구축된 강력한 외국인 공동체가 존속하고 있다. 그레이스 인로드(Gray's Inn Road)에 있는 런던웰시센터(London Welsh Centre)와 리치몬드(Richmond)에 소재한 런던웰시 럭비 클럽(London Welsh rugby club)은 런던에 존재하는 웨일스의 영향력의 유산 중 가장 강력한 것이다. 물론 런던 전역에 웨일스 교회도 몇 곳 남아있다. 그러나 월텀스토우는 런던의 타 지구만큼 웨일스의 역사적 내러티브가 강하지 않은 지역이며, 따라서 이곳에서 웨일스 고유의 전통이 발견된 것은 매우 흥미롭다.
월텀스토우에서 마리 루이드가 발견된 사실은 흥미롭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마리 루이드와 그 주변 활동의 형태일 것이다. 월텀스토우의 마리 루이드에는 유네트코가 수립한 무형문화유산 식별 체계에 따라 마리 루이드 전통의 핵심 요소로 간주될 수 있는 많은 요소가 제외되어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말의 두개골을 사용하는 대신, 마분지로 만들어 파란색으로 칠한 말 인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마리'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전통적인 방식과 동일하게 흰색 천으로 몸을 장식한다. 그러나 과거에는 마리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자신의 정체를 숨겼지만, 월텀스토우에서는 그렇지 않다. 또한 월텀스토우에서는 여성이 마리를 가지고 다닌다. [사진 2와 3]
그 외 마리 루이드의 익숙한 요소들은 월텀스토우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러나 역시 전통적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형태와는 분명히 편차가 있다. 시 낭송 경쟁을 하는 푼코 요소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대폭 감소된 형태로 나타난다. 이 행사에 참여하는 공동체 구성원에게는 노래 악보가 제공되고, 지정된 공공 장소에서 집단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행사가 시작된다. 이 '간소화된' 버전은 보다 복잡한 '오리지널' 형태를 순간적으로 모방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무형문화유산의 보전에 대한 설명에서 핵심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바로 형태의 존속이다. 월텀스토우 마리 루이드에는 비록 달라진 모습이기 하지만 푼코의 형태가 존속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시를 즉각적으로 낭송하는 즉흥성과 숙련된 웨일스어는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이전에 기록된 시 구절이 차례차례 익숙한 방식으로 낭송된다. 따라서 이는 절충된 형태의 전통 유지라 할 수 있다.
2015년(과 2016년) 런던에서는 앞서 언급한 런던웰시센터와 인근 지역 술집들의 주도로 마리 루이드의 '부활' 운동이 일어났다. '런던 웰시 마리 루이드(London Welsh Mari Lwyd)'라는 이름이 붙여질 이 행사의 공동 주최자 중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눈 결과, 마리 루이드의 식별 가능한 형태가 유지되어 새로운 수용자에게 전해지지만 역시 일부 전통적 요소는 제거되었다는 사실이 나타났다. '런던 웰시 마리 루이드'는 스프링 힐드 잭(Spring Heeled Jack) 악단이 런던에 소개한 이니셔티브였다. 악단 멤버인 피온 마이어(Ffion Mair)는 과거 웨일스의 마리 루이드에 참여한 것이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언급하면서도, 마리를 자체적으로 보다 편리하게 만들기를 원했다. 또한 마리 루이드 행사는 악단 홍보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2016년 런던 웰시 마리 루이드는 지역 술집 세 곳을 방문한 후 런던웰시센터에서 행사를 마무리했다. 참가자들에게는 노래 악보가 제공되었는데, 대부분은 웨일즈어로 쓰인 시였다. 런던 중심부에서 온 참가자들은 주로 영어를 사용하므로, 짧은 영어 노래도 함께 제공되었다. 월텀스토우 마리 루이드와 마찬가지로, 마리 루이드는 실제 말 두개골을 쓰는 대신 마분지로 만들어졌다. 이는 웨일스 문화 기관인 트락(Trac)이 제공한 것으로, 아래에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세 명의 사람들이 마리와 동행했지만, 군인 등의 캐릭터는 없는 듯했다. 행사는 마리 루이드와 특별한 관련이 없는 웨일스 민속 춤과 음악 행사인 툼파스(twmpath)로 마무리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마리 루이드 전통으로 인식되는 다양한 요소가 런던에 소개되었다. 그러나 손상되거나 아예 제거된 요소들 간에는 일관성이 있다. 런던에서는 마리만이 유일하게 식별 가능한 특징이었으며, 시는 사전에 준비되었으므로 즉흥적인 집단 합창의 요소는 없는 듯했다. 런던 웰시 마리 루이드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피온 마이어가 밝힌 바와 같이, 웨일스 북부의 디나스 마우드위(Dinas Mawddwy) 지역의 마리 루이드에서 영감을 받아 구체적 형태와 구조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례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디나스 마우드위의 마리 루이드 자체가 과거 전통을 부활시킨 행사이며, 아무리 오래되어도 14년 이상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는 죽은 전통을 부활시킨 것을 또 다시 부활시킨 것이다. 이는 문화적 형태의 유기적 연속성과는 거리가 멀고, 전통을 반복한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그렇다면 19세기 후반부터 민속으로 기록된 마리 루이드에 참여하거나 그것을 본 사람들이 오늘날의 마리 루이드를 보게 된다면 과연 그것이 마리 루이드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을까?
마리 루이드는 부정확한 저널리즘이 횡행하는 오늘날의 문화로 인해 시달리고 있는 전통이다. 마리 루이드는 일관성 있게 '고대의 전통'으로 지칭되지만, 이 개념을 뒷받침할만한 증거는 없다. 선사 시대부터 동물, 특히 동물의 머리를 숭배하는 수많은 사례가 존재하지만, 지난 250년 동안 유지된 마리 루이드 중 어떠한 유형에서도 그러한 사례의 문화적 연속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렇게 증거가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마리 루이드가 고대에서부터 전해 내려온 전통이라는 개념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이미 대중적으로 수용된 개념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학문적인 비교가 수행되었고, 미란다 알드하우스 그린(Miranda Aldhouse Green)은 오늘날의 마리 루이드를 말과 통과의례와 관련 지어 설명한다. 그녀는 그러한 철기 시대의 전통 사례를 통해 이를 설명하는데, 그 중에는 데인버리(Danebury) 등 잘 알려진 의식 장소에서 나타난 사례도 있었다. 줄리엣 우드(Juliette Wood)는 마리 루이드와 통과의례의 관계를 더욱 자세히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서사는 원조 마리 루이드의 형식을 파악하려는 시도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이다.
본 논문은 오늘날 마리 루이드의 두 가지 버전 또는 단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하나는 지난 20년간 형성된 '살아 있는' 마리 루이드이고, 또 하나는 19세기에 존재한 것으로 확인되는 '잃어버린' 마리 루이드이다.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초기 마리 루이드의 진화에서 또다른 단계가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본 논문은 오늘날의 마리 루이드를 과거의 마리 루이드와 별개의 무형문화유산 양식으로 만드는 독특한 특징을 정의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마리 루이드는 학문적 연구의 주제였지만, 최근 수년간 필요한 수준의 학술 연구가 진행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리 루이드에 주목하는 가장 최근의 학술 모임은 2006년 세인트 파간스 국립역사박물관(St Fagans Museum of History)에서 개최된 하루짜리 컨퍼런스였다. 이 컨퍼런스의 목적은 마리 루이드의 현대적 부활의 형태와 다양성을 고찰하는 것이었다. 많은 학자들이 참석한 행사였지만, 안타깝게도 컨퍼런스 회의록이 아직 발표되지 않았으며, 컨퍼런스에서 진행된 논의에서 도출된 정보는 대부분 남아있지 않다.
줄리엣 우드 등 몇 안되는 연구자들이 마리 루이드의 기원을 연구하는 등 최근의 학술 연구는 그 범위가 제한적이다. 그러나 마리 루이드는 과거 수십 년간 연구의 대상이었다. 특히 1940년대에 세인트 파간스 국립역사박물관장을 지낸 이오웨스 페아테(Iorwerth Peate)가 수행한 연구와 트레포 오웬(Trefor Owen)이 1959년에 출판한 중요한 출판물 『웨일스 민속 관습(Welsh Folk Customs』이 큰 기여를 했다. 이 기간에 간행된 출판물들은 마리 루이드의 기원에 관한 합리적인 설명에 초점을 두었으며, 이를 위해 마리 루이드의 형식과 이름에 관한 기독교 이전 시대의 해석과 기독교 기반의 해석을 함께 제시했다.
출판물에서 마리 루이드에 대한 설명이 제시된 경우, 참고 문헌은 간략하게 제시되거나 또는 보다 광범위한 민속 관습의 맥락에서 제시되었다. 프레드 한도(Fred Hando)는 칼리언(Caerleon) 마리 루이드에 참가했던 사람과의 대화를 인용한다. 1950년대에 수행되었던 인터뷰에서 거스 사전트(Gus Sargeant)는 칼리언에서 마리 루이드는 20년 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칼리언에서 사용된 말의 머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말의 턱을 닫을 때면 끔찍한 우드득 소리가 났다 …우리는 눈구멍을 솜과 팝 앨리(pop-alley, 유리병의 한 종류)로 채우고, 솜으로 만든 큰 귀를 달았다 …리본을 단 남자 한 명이 앞장을 서고, 그 뒤를 흰 천으로 덮인 마리가 따른다. 그리고 세 명의 가수가 마리 뒤를 따라간다."
웨일스 전역에 걸쳐 이와 유사한 간략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으며, 주로 지역의 출판물에 수록되어 있다. 《고웰 소사이어티〈Gower Society〉》 저널은 스완지(Swansea) 인근 멈블스(Mumbles)의 마리 루이드에 관한 반 페이지짜리 간단한 요약을 제공한다. 마리 루이드는 "재치 있고 시의 라임(rhyme)을 잘 맞추는 지역 젊은이들과 소녀들이 괴상한 의상을 입고 참가하는 파티로, 긴 흰색 천으로 몸을 감싼 리더와 화려한 리본으로 장식된 말 머리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지역 신문 기사에 의해 뒷받침되는 이러한 설명은 웨일스의 마리 루이드 전통에 관한 개요를 제공한다.
마리 루이드를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텍스트는 윌리엄 로버츠(William Roberts) 목사의 이스테드버드 관련 논문이다. 1852년에 작성한 이 문서에서 로버츠 목사는 마리 루이드를 삼가야 할 부도덕한 관행으로 묘사하며 그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한 주장을 제시했다. 그가 제출한 문서에는 마리의 형태에 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푼코 시 몇 구절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저작은 마리 루이드의 장기적 존속을 방해하려는 의도로 작성되었지만, 의도치 않게도 웨일스 전역과 그 외 지역의 마리 루이드 전통과 푼코 시의 양식을 알려주는 찾기 쉬운 기록을 만든 셈이 되었다. 웨일스 국립역사박물관인 세인트 파간스(St Fagans)에서 매년 개최되는 마리 루이드 부활 행사는 이 양식을 활용하는 다양한 사례 중 하나이다. 한편 이 행사는 마리 루이드의 '화석화'에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는 것으로 언급되어 왔다.
현재 웨일스에는 다양한 마리 루이드의 변종이 존재하며, 그 중 일부는 중요한 역사적인 전통을 보유한 것으로 주장된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지난 수십 년 내에 등장한 일부 사례에 집중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이러한 '부활'의 사례들은 아마도 과거 기록에서 정의된 것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형태의 마리 루이드를 가장 잘 나타내는 사례일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다양한 마리 루이드 사례의 철저한 목록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우선, 아직 1-2년 밖에 되지 않은 부활 사례가 많으므로 그러한 목록을 작성하는 것은 실용성이 없기 때문이다. 아래에 상세히 설명한 바와 같이, 2015년에 부활된 칼리언 마리 루이드는 1년 만에 사라졌다. 이렇게 짧은 기간 존재했다가 사라진 모든 사례를 설명하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민속 예술 발전·진흥기관인 트락(Trac)이 현존하는 마리 루이드의 사례를 기록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트락의 기록은 현대적 마리 루이드에 관해 이용 가능한 가장 완전한 아카이브이며, 따라서 이러한 기록과 중복되는 연구를 수행할 직접적인 필요가 없다. 그 대신, 본 논문에서는 보다 독특한 일부 변종에 관해 논하고자 한다.
가장 성공적인 마리 루이드 부활 사례는 아마도 쳅스토(Chepstow)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쳅스토 마리 루이드 역시 과거 서사를 유지한다기보다는 반복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가장 놀라운 마리 루이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쳅스토 마리 루이드의 홍보 웹사이트 역시 이러한 사실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웹사이트는 이 행사를 "웨일스에서 가장 새로운 옛 전통, 또는 가장 오래된 새 전통"이라고 언급한다. 2005년에 시작된 쳅스토 마리는 웨일스 남동부의 중요한 지역 행사로 성장했다. 이 행사는 쳅스토의 중요한 장소 두 곳에 중점을 둔다. 바로 역사적인 마을 다리와 및 지역 박물관이다. 하루종일 진행되는 이 행사는 또한 쳅스토 성(Chepstow Castle), 지역 술집, 연무장(Drill Hall)도 방문한다. 이 행사에는 매년 수백 명은 족히 되는 사람들이 참가하며, 주최측은 항상 지역 학교들을 우선 순위로 함으로써 지역사회의 참여를 이끌어낸다.
지금까지 언급한 역사적 사례를 볼 때, 예상 가능한 마리 루이드 전통의 요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중요한 요소는 장식된 말의 두개골, 말을 따라다니는 소규모의 무리, 그리고 푼코이다. 쳅스토는 분명히 이러한 요소를 존중하지만 행사를 하루 종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요소들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지역의 국경 무용단인 '더 위더스(The Widders)'는 독일에서 말의 두개골을 가져왔으며,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그 두개골을 계속 사용한다. 소규모의 무리가 마리를 따라 다니지만, 식별할 수 있는 '캐릭터'는 없다. 그러나 이 행사가 중요한 이유는 단일한 종류의 마리가 사용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이 웨일스 전역의 몇 가지 전통적 사례와 잉글랜드 지역 사회의 변종을 결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록에 따르면 매년 7개 이상의 마리 변종이 행사에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는 칼마르텐(Carmarthen), 란비항엘 토르 므뉴드(Llanfihangel Tor y Mynydd), 몬머스셔(Monmouthshire), 펨브로케(Pembroke), 스완지에서 사용하는 웨일스 마리(Wales Mari)와 노팅엄의 '푸르 하우드 오스(Poor Awd Oss)', 글로스터셔 기반의 '브로드 헤드(Broad head), 스트로이드(Stroud)의 말 머리가 포함된다. 이러한 사례의 목록은 해마다 바뀌지만, 마리 루이드 변종이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일관된 요소이다. 이러한 사례를 바탕으로, 단일한 마리의 중요성이 상실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또한, 어떤 방식으로든 마리 루이드의 종류가 감소하게 될 경우, 현대의 마리 루이드 전통이 여전히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지가 의심스럽다. [사진 4]
푼코는 마을 박물관 밖에서 수행된다. 그러나 런던에서 나타난 두 건의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바와 같이 노래 및 시 낭송 경쟁이라는 창의적인 요소는 없어지고, 푼코 진행 전에 공식적으로 배포되는 노래 악보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여기서 사용되는 '노래' 중 하나는 윌리엄 로버츠가 기록해 놓은 시를 기반으로 한다. 과거의 즉흥적 시 낭송 경쟁을 기록해놓은 자료에 나오는 시를 종이에 써 놓고, 박물관 문 앞에서 그대로 낭송하는 것이다. 박물관 안에서는 다수의 마리가 박물관을 거쳐 뒷문을 빠져 나가기 전에 읽을 답시를 준비해둔다. 그리고는 연무관(Drill Hall)에서 음악과 춤이 있는 공동체 사교 행사를 여는 것으로 행사를 마무리 한다.
쳅스토 마리 루이드는 체계적으로 계획된 행사이다. 이 행사의 홍보 웹사이트를 보면 이 '전통'의 진정한 본질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마리 루이드가 마을의 각 지정된 위치에서 '공연'되는 시간이 나와있기 때문이다. 즉흥성 대신 형식과 구조가 자리잡은 것이다. 앞에서 시사한 바와 같이, 쳅스토 마리 루이드는 오늘날 웨일스에서 가장 성공적인 마리 루이드의 '부활' 사례로 기념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많은 사람이 참가하는 행사를 만들기 위해 전통적인 요소의 많은 부분을 손상시킨 부활 사례이다. 아마도 이것이 현대 마리 루이드 전통의 핵심 지표이며, 과거 버전과 차별화되는 요소일 것이다.
네아스 포르트 탈봇(Neath Port Talbot)의 크우마완(Cwmafan, 크우마본(Cwmavon)이라고도 함)에서는 규모는 작지만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사례는 남서부 웨일스의 마리 루이드 사례로, 25년 전인 1991년에 처음으로 부활되었다. 쳅스토 사례와는 달리 이 사례는 인근에 역사적으로 입증된 마리 루이드가 기록되어 있어, 원래 마리 루이드가 존재했던 바로 그 지역에서 부활된 사례에 해당한다. 크우마완 마리 루이의 공동 창립자 중 하나인 팀 리스(Tim Rees)에 따르면, 이 부활 사례는 마리 루이드의 전통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란 지역 사람들이 마리 루이드에 관해 알고 있는 다양한 지식이 모여 탄생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 사례의 탄생에 가장 중요한 촉매 역할을 한 것은 지역 럭비 클럽의 주장이었다. 그가 이 전통을 되살리는 것이 '꽤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추진하게 된 것이다.
리스는 크우마완 마리의 두개골이 그 지역에서 나온 것임을 시사했다. 또한 그 기원을 설명하는 가상의 민속 서사를 인정했다. 그 지역에서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지역의 한 농부가 선물한 그 두개골은 중세 시대 아판(Afan)의 영주들이 소유했던 혈통의 말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허버트 피츠 윌리엄(Herbert Fitz William)은 1245년 웨일스 군에게 목숨을 잃었는데, 지역 설화에 따르면 웨일스 사람이 던진 돌에 머리를 맞고 말에서 떨어져 죽은 것이라고 한다. 허버트는 말에서 떨어져 죽었지만 말은 근처 숲으로 도망쳤고, 그곳에서 새끼를 낳아 거의 현재에 이르기까지 혈통을 유지했다. 꾸며낸 것이 거의 확실한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로 인해 크우마완의 마리 루이드 두개골은 더욱 신비롭고 지역 사회와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크우마완 마리 루이드의 형식은 마리 루이드 전통에 관한 역사적인 셜명을 보다 정확하게 따른다. 두 명 이하의 소그룹이 마리 루이드와 동행하며, (주택이 아닌) 지역 술집을 주로 돌아다닌다. 리스는 경쟁적인 푼코 요소에 사용되는 '전통' 시를 이야기했지만, 이는 윌리엄 로버츠의 설명을 바탕으로 한 '웰 드마 닌 드와드(wel dyma ni'n diwad)' 시를 의미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즉흥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일부 존재한다. 즉석에서 지어 낭송하는 시는 비교적 단순한 내용일 수 있지만, 순간적으로 새로운 시를 창작하여 낭송하는 정신은 존중되고 있다. 일단 선택된 술집 안에 들어가면 노래 악보가 제공되며, 마리와 동행하는 소규모의 집단이 노래를 선창하거나 주도한다.
크우마완 마리 루이드의 중요한 특징은 그것이 성금 모금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리스는 성금 모금은 창립 초기부터 크우마완 마리의 핵심 요소였다고 설명한다. 1991년에는 맥밀런(Macmillan) 암 지원 단체가 성금 모금 활동의 중심이었고, 최근 2015년에는 불특정 자선 단체를 지원하기 위해 530파운드가 모금되었다. 만약 역사적인 마리 루이드가 어느 정도라도 일년 중 어려운 시기에 지역사회 구성원들을 도와주고 방문하는 공동체 기능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성금 모금이라는 요소는 그러한 자선 활동의 연속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리스는 성금 모금의 중요성에 대한 또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자선이라는 함의가 마리 루이드의 어두운 성격을 중화시켜, 일부 수용자가 받아들이기 쉽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자선 활동이 어둡고 사악하며 무서울 수 있는 행사를 사회적으로 보다 수용하기 쉬운 것으로 만들어줄 수 있을까? 성금 모금은 현대 마리 루이드에서 일관성 있게 나타나는 요소인 것으로 보인다.
성금 모금이라는 요소는 또다른 현대 마리 루이드 변종에서도 나타난다. 카디프의 민속 춤 단체인 다운스위르 투르 트루이스(Dawnswyr Twrch Trwyth)는 카디프 도심의 술집들을 돌며 춤을 추어 자선 기부금을 모은다. 웨일스 북부 플린트(Fflint)의 다운스위르 델른(Dawnswyr Delyn) 민속 단체는 마리 루이드를 28년간 유지했다. 2016년에 이들은 마리 루이드 행사의 일환으로 웨일스어를 기념하는 청소년 문화 축제 우르드 이스테드버드(Urdd Eisteddfod)를 주최하는 마을을 위해 성금을 모금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다른 자선 단체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성금을 지원했다. 그렇다고 자선 성금 모금이 모든 마리 루이드의 핵심 요소인 것은 아니지만, 현대적 형태의 마리 루이드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점점 발전중인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보다 확립된 마리 루이드 부활 사례들 중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소수의 사례가 있다. 예를 들어 다운스위르 델른 마리 루이드는 블란드포드(Blandford)의 표현에 따르면 '세인트 파간스 푼코'를 사용하여, 참가자들이 악보를 보고 노래를 한다. 국립역사박물관인 세인트 파간스는 1980년대부터 마리 루이드를 유지해왔다. 이 박물관은 '살아있는 역사 박물관'으로 관리되어, 역사 속의 행사와 활동을 재현하는 것을 해석 전략의 일환으로 삼는다. 이곳에서 매년 진행되는 마리 루이드에서는 윌리엄 로버츠가 기록한 시를 푼코에 사용하여, 새로운 시를 즉흥적으로 만들기보다는 이미 적혀 있는 시를 낭송한다. 그러므로 국립박물관의 재현에 기반하여 마리 루이드를 '공연'하는 셈이다. 또한 이러한 국립박물관의 재현은 19세기에 기록된 글라모르간시레(Glamorganshire) 사례를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례의 정통성은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본 연구의 목적은 현대의 마리 루이드를 통해 새로운 전통이 창조되었는지 여부를 밝히고, 현대의 마리 루이드가 오래된 과거 전통의 연속인지 여부를 질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플린트시레(Flintshire) 마리는 오랜 전통의 연속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새로운 변종으로 간주될 수는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마리 루이드를 이해하는 것과 관련한 어려움 중 하나는 변종이 너무나 다양하다는 점에 기인한다. 본 논문을 작성하는 동안에도 몇 가지의 '새로운' 마리 루이드가 확인되었다. 2015년 12월에는 앙글레세이(Anglesey)에서 마리 루이드가 시작되었다. 드루이드(Druid)처럼 꾸민 세 명의 사람들이 말의 두개골을 가지고 신석기 시대의 고분인 브런 케이리 디(Bryn Celli Ddu)를 방문했다. 표면적으로 이는 장식된 두개골의 존재를 감안할 때 마리 루이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쟁적인 푼코와 같은 주요 특징은 나타나지 않았다. 따라서, 다시 말하자면 '새로운' 전통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전통의 핵심 구성 요소가 손상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칼리언의 마리 루이드는 부활은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2015년 칼리언의 애호가들은 앙글레세이와는 달리 역사적으로 증명된 마리 루이드의 사례가 존재하는 칼리언에서 마리 루이드를 부활시키고자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들은 쳅스토 마리 루이드 주최자들의 지원에 크게 의존했다. 여기에는 말 두개골의 사용, 푼코를 위한 구조와 노래 악보 무용수의 사용 등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다른 일로 바빴던 쳅스토 마리 주최자들은 2016년에는 지원을 계속할 수 없었고, 따라서 칼리언 마리 루이드는 한 번으로 끝나버렸다.
애호가들이 마리 루이드를 '공연'하는 것은 점점 더 쉬워지고 있다. 런던 웰시의 사례에서는 트락이 제공한 마분지 '조립식' 두개골이 사용되었다. 트락 컴르(Trac Cymru)는 2012년에 '오 웰라 닌 드보드(O Wela nin Dyfod)'라는 이니셔티브를 출범했다. 이 프로그램은 저렴한 가격의 '조립식' 두개골 디자인을 만들어 마리 루이드 전통을 활성화하고 발전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사진5] 이를 통해 학교와 지역사회 단체들은 말 두개골 구입과 관련된 비용이나 윤리적 우려 없이 마리 루이드 전통에 접근하고 그것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런던 웰시의 경우 마리 루이드 전통은 이 새로운 공동체에서 부활된 것이었는데, 트락의 지원과 저렴한 골판지 두개골이 없었다면 마리 루이드는 그곳에서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언급하자면, 이것을 과연 진정한 마리 루이드 사례라고 간주될 수 있을까? 푼코와 마리와 동행하는 무리의 구조는 희생할 수 있겠지만, 두개골이라는 요소가 손상되더라도 마리 루이드를 진정으로 유지할 수 있을까? 모든 마리 루이드 사례가 실제 두개골을 사용한다고 시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나무로 만든 인형을 사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사례들 중에는 란비항엘(Llanfihangel)의 마리 루이드가 있으며, 토르 므뉴드의 사례는 1999년부터 지속적으로 나무로 만든 말 머리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조립식 버전의 마리를 도입한 것은 지역 사람들이 나무로 말 머리를 만들거나 두개골을 구매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변화이다. 조립식 마리는 마리 루이드 전통에서 물리적 사물에 뿌리를 둔 유일한 요소를 일시적이며 취약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현대 마리 루이드의 정통성에 관해서는 지역성, 또는 지리적 위치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앞서 분석된 바와 같이, 또한 최근 쳅스토 마리 루이드 변종 관련 컨퍼런스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마리 루이드는 잉글랜드 전역에 걸쳐 명확한 반복 또는 변종이 존재하는 전통이다. 마리 루이드라는 이름과 푼코는 웨일스 특유의 특징이지만, 잉글랜드의 사례들은 한겨울의 통과의례 '행사'에 말(또는 다른 동물의) 머리를 사용하는 전통을 분명히 유지하고 있다. [사진6]
최근 몇 년간 미국에서 마리 루이드 사례가 기록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웨일스 출신의 사람들이 이동을 하듯이 웨일스의 문화적 특성 역시 이동한다. 2012-2013년에 마리 루이드는 2011년에 시작된 연례 문화 행사인 로스앤젤레스 세인트 데이비드 데이 페스티벌(Los Angeles St. David's Day Festival)의 일환으로 로스앤젤레스에 등장했다. [사진7] 로스앤젤레스의 마리 루이드는 로스앤젤레스의 웨일스 장로교회가 폐쇄된 해에 처음 등장했다. 웨일스 문화센터가 하나 줄어들자 웨일스의 문화적 전통 하나가 부활된 것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본 논문을 작성하는 동안 피츠버그 출신의 오웬 칸(Owen Kahn)이라는 사람에게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마리 루이드에 관한 저자의 연구를 접했고, 마리 루이드에 관한 자신의 열정을 나누기를 원했다. 그는 2015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말의 두개골을 받았다며,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마리 루이드를 시작해보고 싶어했다. 오웬은('오웬'이 웨일스 이름이며 피츠버그 지역에는 역사적으로 웨일스 출신 사람들이 많이 살아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조상은 웨일스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마리 루이드를 시작하고자하는 바람은 순수하게 해당 전통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라고 밝혔다. 조립식 말 머리가 도입되고 마리 루이드 관습에 관한 국제적인 인식이 확대되고 있으므로, 웨일스 외부에서 마리 루이드가 성공적으로 부활되는 사례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웨일스어의 중요성과 푼코와 같은 요소는 계속 줄어들 것이다.
본 논문은 오늘날 웨일스의 무형문화유산 사례로 두 가지의 마리 루이드 형태가 존재한다는 의견으로 시작되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무형문화유산의 본질은 일시성, 그리고 그것이 유지되는 문화적 환경에 따라 변화, 진화 및 적응하는 경향이다. 그러나 적응의 과정에서 기존의 전통은 사라지고 전혀 다른 존재가 탄생하는 전환점이 있을 수 있다. 본 논문은 웨일스의 마리 루이드에 바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랑건위드(Llangynwyd)와 마이스텍(Maesteg)의 마리와 같은 일부 사례는 1세기 이상 지속되는 관습의 연속이라는 주장을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례들은 그렇지 못하다. 오늘날 행해지는 마리 루이드의 대다수의 계보는 30년이 채 되지 않으며, 그 중 상당수는 과거 10년 내에 등장한 것이다. 본 논문은 그러한 마리 루이드는 전통적인 마리 루이드 관습의 사례가 아니라 오히려 별개의 전통 형태로 간주되어야 하며, 그러나 동시에 여전히 정통성 있는 무형문화유산을 대표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앞에서 전통적 마리 루이드에 대한 몇 가지 식별 특징을 살펴보았다. 여기에는 다음이 포함된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러한 특징들이 마리 루이드에 관한 역사적인 기록에 흔히 등장하는 요소임은 분명하다. 현대판 마리 루이드는 다음 기준에 따라 요약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또한 마리 루이드가 민속 무용 단체의 공연과 함께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사실도 덧붙여야 할 듯하다. 이렇게 무용 공연이 동반되는 현상은 보편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점점 더 자주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과거 사례의 특징에 해당하지 않는다.
본 논문은 무형문화유산으로서 '역사적인' 마리 루이드의 특정한 근본적 요소가 상실 또는 손상되었음을 규명한다. 발리 전통 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존재하는 마리 루이드는 어떤 면에서는 피상적인 모방에 불과하다. 마리의 머리를 현지에서 구하는 것에 대한 강조가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비용과 윤리 문제로 인해 두개골을 사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마리와 동행하는 무리는 이제 말을 이끄는 사람 1명, 또는 정해진 형태가 없는 10-20여명의 무리로 대체됐다. 캐릭터의 사용은 대체로 사라졌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푼코 역시 사라졌다. 공식화된 노래 악보를 보고 공연을 하며, 낭송 경쟁은 기록된 단일 사례에 의존한다. 또한 집집마다 방문하는 대신 지역 술집들을 방문하며, 성금 모금을 마리 루이드 행사 개최의 공통적 특징이자 동기로 삼고 있다.
딕시(Dixey)는 웨일스에서 조직 수준에 따라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분류되는 두 가지 무형문화유산의 범주가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그는 마리 루이드 전통은 조직 기관이 없기 때문에 '공식' 무형문화유산으로 간주되기 위해 필요한 형식성, 구조 및 국가의 자금 지원이 결여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마리 루이드는 분명한 조직의 차원이 나타나므로, 이와 같은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마리 루이드는 희귀하고 비밀스러운 비공개 행사가 아니라 널리 홍보되는 행사이며, 지역사회의 문화행사 중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리 루이드는 이제 비밀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관습과는 거리가 먼, '공식적'이며 고도로 조직된 전통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할 수 있다. 웨일스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아 트락이 수행한 홍보 활동 역시 딕시가 '공식' 지위 부여에 필요한 것으로 간주하는 '국가의 인정'을 충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논문의 목적은 현대적 버전의 마리 루이드가 무형문화유산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마리 루이드로 간주되는 것은 사라졌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쳅스토, 플린트, 런던, 란비항엘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마리 루이드는 별개의 새로운 변종이다. 이는 열정적인 개인들과 공동체 집단이 유기적으로 만든 것으로, 대부분 그 역사가 20년을 넘지 않는다. 이 새로운 마리 루이드는 환영 받아 마땅한 무형문화유산의 타당한 사례이며, 국가 및 정부의 자금이나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오늘날의 마리 루이드는 별개의 분류가 적절할 정도로 과거의 마리 루이드와는 달라졌다. 그러나 새로운 관습은 취약하다. 추가적인 보호 조치가 없을 경우, 그것은 의미와 중요성은 찾아볼 수 없는 크리스마스 기간의 대중적 오락을 위한 공연에 머물 게 될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