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 : 그레고리 한센(Gregory Hansen)
Year : 2013
이 책은 뉴캐슬대학(Newcastle University) 국제문화유산연구소(International Centre for Cultural and Heritage Studies)의 ‘유산은 소중하다(Heritage Matters)’ 시리즈 신간이다. 유산 운동 분야에서 저명한 학자들의 원고와 인터뷰를 미셸 스테파노, 피터 데이비스, 제럴드 코세인이 공편했다. 16건의 글과 5건의 ‘대담’이 실렸다. 대담 5건은 다양한 지역의 전문기구에서 활동하는 유산 분야 학자들의 심층 인터뷰다. 전반적으로 볼 때, 정치, 경제, 역사, 지리 등 다양한 맥락에서 무형문화유산의 보존 문제를 조명한 유산분야 신양서(新良書)라 할 수 있다.
정책입안자들이나 보존운동가들은 물질문화에 주로 초점을 맞춘다. 역사재단은 물론, 유네스코와 ICOMOS도 국가사적지 등록이나 조성을 통한 건조환경 보존을 강조한다. 2003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은 문화의 무형적 요소에 대한 관심을 높여 이런 고루한 접근법을 어느 정도 보완했다. 유네스코 정의에 따르면 무형문화유산은 구전 전통, 언어, 공연 예술, 의식, 민속과 민중 생활 범주의 다양한 예술 형태를 포함하는 문화적 표현 요소의 집합체다. 무형문화유산을 규정하는 법규가 최근 국제정책과 보존운동가들에 의해 성문화됐지만, 여러 국가에서 전부터 다양한 문화자원 보호정책을 시행하고 있던 터였다. 예를 들어, 메리 허퍼드(Mary Hufford)가 1994년 엮은 『문화 보존: 유산에 관한 새로운 담론(Cultural Conservation: A New Discourse on Heritage)』은 건조환경 보존을 중시하는 전통적 보존 운동의 범주 안에서 각종 문화적 표현물을 수용하는 문화보존 패러다임에 대해 논한다. 2006년 『유산의 사용(Uses of Heritage)』이란 책을 펴낸 로라제인 스미스(Laurajane Smith)를 포함하여 여러 학자들이 유형과 무형을 구분하는 이분법을 비판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책에 기고한 학자들의 관점도 대부분 허퍼드나 스미스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이들은 유산자원의 중요성이 건조환경 및 자연환경의 무형의 의미에서 파생됨을 보여준다.
이런 측면에서 스테파노, 데이비스, 코세인이 뛰어난 기교를 발휘하여 엮은 글들은 유산 담론과 보존운동에 큰 기여를 한다고 볼 수 있다. 각 글에 담긴 구체적 주장을 여기에 소개하기에는 지면이 너무 부족하다. 다만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분명하다. 정제된 서문에 이어 등장하는 첫 장은 마릴레나 알리비자투(Marilena Alivizatou)의 ‘무형유산 패러독스’다. 그녀는 문화의 불가피한 요소들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맞닥뜨리게 되는 과제와 모순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녀의 통찰력이 이 책의 첫 번째 섹션 ‘무형유산 지정을 위한 협상과 평가’에서 여섯 저자가 다루고 있는 다양한 주제에 깊이를 더한다. 알리산드라 커밍스(Alissandra Cummins)는 유산 보호와 박물관 문화활동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적인 긴장감을 다뤘다. 그러면서 유산이란 박물관에서 공연처럼 펼쳐져야지 박제 상태로 진열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무형문화유산을 퍼포먼스란 개념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이 섹션 내 여러 글에서 재차 등장한다. 저자들은 문화를 단순히 유산 자원의 집합체나 문화산업의 재료 정도로 여겨서는 안 되며 역동적 체계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와 베르그달(Ewa Bergdahl)과 바산트 하리 베데카르(Vasant Hari Bedekar)의 대담에는, 두 학자가 모국인 스웨덴(Bergdahl)과 인도(Bedekar)의 정책 및 프로그램을 소재로 유산 자원과 문화 보존에 대해 나누었던 열띤 대화가 담겨 있다.
두 번째 섹션에는 ‘무형문화유산 개념의 적용’이란 제목 아래 6개의 글이 실렸다. 크리스티앙 오탱(Christian Hottin)과 실비 그레넷(Sylvie Grenet)은 프랑스에서 2003년 유네스코 협약을 중심으로 유산 보호 활동이 정책 개발과 융합된 과정을 상세히 전달하고 있다. 두 저자는 유네스코 정책을 특정 상황에 적용한 성공 사례와 문제점을 다양하게 제시했다. 역사 보존 노력을 다루는 글에서 자주 강조되는 사례 연구의 전형적 서술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호주의 정부 정책과 무형유산에 대한 린 리더-엘리엇(Lyn Leader-Elliott)과 대니엘라 트림볼리(Daniella Trimboli)의 글은 국제사회, 국가, 원주민 공동체 차원의 유산 정책이 갖는 상관관계를 심도 깊게 탐구했다. 이 섹션의 나머지 글과 수전 카이투메체(Susan Keitumetse) 대담은 무형문화유산 정책 및 관행에 관한 문화정치학 연구에 더 없이 유용한 상대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네덜란드, 웨일스, 보츠와나, 노바스코샤의 다양한 사례를 비교, 대조해 수많은 상황에 적용 가능한 관점을 제공했다. 저자들은 다양한 정치적 어젠다와 이데올로기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쟁점에 대해 단순히 ‘문제 제기’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산’이 논란의 여지가 많은 용어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양한 문화 집단 사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외견상 동질성을 보이는 집단 사이에서도 논란은 일어난다. 또한 저자들은 하나의 무형문화유산 정책을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적용하는 ‘만병통치약’식 접근법을 택할 경우 어떤 한계에 직면하게 되는지 설명하고 있다. 보편적 개념은 반드시 각 지역 고유의 필요와 이해관계에 맞춰 다듬어져야 한다. 앤드류 딕시(Andrew Dixey)의 글도 눈길을 끈다. 그는 무형문화유산을 지원하려면 사라져가는 문화적 표현물의 흔적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말고 소멸 직전에 놓인 표현물을 되살리고 재생하는 운동까지 지원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세 번째 섹션에는 ‘현장에서: 무형유산 보호’란 제목이 붙었다. 해리엇 디컨(Harriet Deacon)과 마우리지오 마기(Maurizio Maggi) 대담 두 건이 실려 있다. 디컨은 남아프리카의 무형유산, 마기는 이탈리아의 무형유산에 초점을 맞췄다. 두 사람의 의견은 유사점도 많지만 그만큼 차이도 극명하다. 그러나 이 섹션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나머지 글 여섯 건에서 이론적 논의를 다양한 사례 연구에 접목한 방식이다. 각각의 글은 앞의 두 섹션에서 소개된 아이디어들을 논리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앞 섹션에서 제시된 구체적 쟁점과 사례 연구가 마지막 섹션에서 좀 더 일반화된 주장을 펼치는 데 적절한 배경을 제공한다. 환경박물관학적 접근법에 관한 스테파노의 글은 역사 보존과 문화 보호를 무형문화유산으로 융합하는 방식을 어떻게 개념화할 수 있을 것인지 명확히 보여준다. 목록과 인벤토리를 만드는 데 ‘하향식’ 시스템은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이 특히 중요하다. 스테파노는 유산 인벤토리 작성 과정의 문제점을 검토하고, 그 보완책으로 지역사회와 주민들의 필요와 이해관계에 중점을 두는 접근법을 제시한다. 조금 유감스럽지만 이 접근법을 간혹 '상향식' 전략이라 지칭하는 사람도 있다. 계급적 편견의 뉘앙스가 풍기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스테파노의 요지는, 생태학과 역동적인 문화 시스템이라는 보다 광범위한 개념 안에서 무형문화유산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목록, 법규를 통해 무형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정책을 다른 대안으로 대체해야 한다면서 지역사회 주민들의 유산, 역사, 문화에 대한 시각 형성에 주요한 영향을 미친 공간과 시간 환경 안에 무형문화유산을 집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지역민의 필요와 이해관계에 먼저 부응하는 정책과 프로그램 개발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각종 사례들을 통해 보여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목록과 인벤토리’ 접근법이 문화적 창조성을 화석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설득력 있는 경고를 던지고 있다. 그녀의 글은 문화유산 보호에 있어 보다 지속가능한 접근법이 어떤 것인지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무형문화유산과 관련한 쟁점을 대대적으로 진단한 최초의 출간물로 다양한 학문분야에 걸친 연구를 토대로 탄생했다. 인류학자, 민속학자, 역사학자, 박물관 전문가, 역사 보존주의자의 글이 한데 모여 놀라우리만큼 일관성 있는 분석을 제시한다.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읽기 쉽게 서술된 21건의 글과 대담을 통해 오늘날 유산 운동에 내재하는 역사 보존 및 문화 보호 관련 담론이 무형문화유산까지 담아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