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이그보 사회의 신: 은디 은수카, 1960-2016

Writer : Okonkwo C. Eze
Year : 2018


개요


신(Deity)은 항상 은수카(Nsukka) 지역 주민들의 사회정치적 삶에서 중요한 요소였으며, 개인간 및 집단간의 관계를 정의하는 역할을 했다. 즉, 신이라는 제도는 사회의 수평적 차원뿐 아니라 수직적 차원에서도 돈독한 관계가 존재하도록 해 주었다. 따라서 신은 은수카와 이그보(Igbo) 지역 전체에서 사람들과 세계에 대한 궁극적 비전을 제공해왔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공정하게 정의와 중재를 집행하여 사람들 간에 평화와 조화를 증진했던 신들이 최근 수년간 조직화된 종교, 특히 기독교의 끈질긴 공격에 직면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은수카 역사에서 이러한 측면은 무시되었으며, 제대로 조사되지 않거나 논의되지 않아왔다. 그 결과, 유서 깊은 이러한 전통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부분적이며 왜곡되어 있는 실정이다. 본 연구는 지금까지 등한시되었던 이러한 영역을 살펴봄으로써, 은수카 사람들의 역사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 풍부하게 하고자 한다. 두 가지 명백한 이유에 따라, 본 연구가 시작된 시점은 1960년으로 정했다. 1960년은 나이지리아가 독립을 이룬 해이며, 이에 따라 은수카 사람들이 그들의 훼손된 신 또는 ‘얻어맞은 신(battered deities)’을 새롭게 재조직하도록 하는 문화적 재탄생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1960년 은수카에 나이지리아대학(University of Nigeria)이 개교하면서, 수많은 기독교 종파들의 ‘침략’이 시작되었고, 엄청난 수의 원주민이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다. 본 연구의 종료 시점은 올해인 2016년이다. 올해에 일련의 유명한 사건들에 이어 두 명의 젊은이가 자살을 했는데, 여기에 신이 개입한 것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로 인해 전통주의자들의 수를 크게 줄어든 것과는 별개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지나치게 열성적인 일부 기독교 개종자들이 성스러운 신을 표현한 인형(effigy)을 노골적으로 파괴하고 불태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변절자들 중 일부는 어렵고 문제가 생길 때는 이러한 신들에게 다시 의지해왔다. 신은 이러한 지지를 바탕으로, 은수카 문화 집단 내의 전통주의자들의 삶에서 그 중요성을 유지해온 것으로 생각된다. 보편적 종교에서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이러한 신들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그보랜드(Igboland)의 다른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은수카에서도 그 존재를 지속했다. 본 연구는 기독교와 서구화의 시대에 이러한 신들이 갖는 지속적 중요성을 살펴보는 것을 중점으로 한다.



서론

이그보(Igbo)족은 나이지리아 3대 민족 중 하나이다. 다른 두 민족은 하루사-풀라니(Hausa-Fulani)족과 요루바(Yoruba)족이다. 이그보 제국은 은수카(Nsukka)를 포함한 몇 개의 하위문화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하위문화 집단은 이그보어 중에서도 독특한 방언을 구사하며, 이는 주변의 비 이그보 민족의 언어에서 영향 받은 경우가 많다.이를 제외한 다른 측면은 다른 이그보족과 유사하다. 이그보족은 나름의 자연 종교를 갖고 있다. 이슬람이나 기독교와는 달리, 이그보족의 종교는 신의 계시를 주장하지 않는다. 신은 하느님(God)과 사람들의 간극을 좁혀준다. 이그보랜드의 여타 마을에서와 마찬가지로, 은수카 지역에서 신은 정치·경제부터 사회·사법까지 다양한 직무를 수행한다. 즉, 신은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이그보랜드에 도래하기 이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이그보족의 삶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은수카 지역에서는 거의 모든 지역사회에 신이 존재했다(일부 지역사회에는 아직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신들은 두 개의 보편적 종교에 신도들을 빼앗겨왔다. 일부 변절자들은 이러한 전통 신들이 휴면 상태이거나 죽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신들은 "이슬람교와 기독교, 그리고 서구주의(서구 문화와 과학기술)의 합동 공격으로 심하게 얻어맞았다. 그러나[sic] 우리의 마을과 도시의 엄연한 현실은 …(신들이) 마지막 죽음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조사 결과, 이러한 신들 중 일부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존재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들은 은수카 사회의 억압받고 힘없는 취약 계층에게 여전히 정의의 신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신(deity)이라는 개념에는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단일한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부 사람들은 신을 하느님(God)를 뜻하는 또다른 단어로 사용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구체적인 신과 연관시킨다." 이 단어의 어원은 '하느님'을 의미하는 라틴어 데이타스(deitas) 또는 데우스(Deus)이다. 이들은 하느님과 같은 일부 신적인 성격을 부여 받았으며,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절(ambassador)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은수카에서, 그리고 실제로 이그보 우주론에서 하느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 따라서 하느님과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불어, 창조주 하느님인 치(Chi), 치-우쿠(Chi-Ukwu), 치네케(Chineke) 또는 에제 치토케(Eze Chitoke)는 훌륭하고 강력한 존재이며, 인간의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신(deity)과 같은 수행원을 둔다. 은수카 사람들은 에제 치토케가 도처에 산재한 다양한 신에게 사람의 일에 개입할 수 있는 힘을 부여했다고 믿는다. E.O.아냐초(E.O.Anyacho)는 "그들은(신들은) 하느님과 가까우며 사람들보다 우월하다. 따라서 그들은 하느님과 사회 사이의 중재자이며, 사회를 구하거나 파괴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양하는 힘을 보유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마치 은수카에 중점을 둔 설명인 것처럼 느껴진다.

신이 창조주 하느님과 공유하는 하나의 특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신들의 제단이나 성지에서는 초기 선교사들과 저술가들이 우상, 주물 또는 숭배물로 오해하고 잘못 전달했던 사물, 그림, 인형 등이 발견된다. 일례로, 초기 선교사였던 에밀 루드비히(Emil Ludwig)는 '신'이라는 용어는 야만적인 아프리카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추상적 개념이라고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신이란 야만인들의 머리로는 표현할 수 없는 철학적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초기 선교사들은 이러한 관점으로 아프리카의 신, 이그보족의 신을 '숨은 신(deus absconditius)', 멀리 있는 신(deus remotus)', 불확실한 신(deus incertus)' 등으로 생각했다.

은수카 사람들은 '행위는 존재를 따른다(agere sequitur esse)'고 생각하며, 이는 신이 수행한 것으로 생각되는 기능으로부터 신의 존재를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게다가 본질적으로 영혼인 신들은 숨어 있다고도 멀리 있다고도 할 수 없다. 따라서 신이 사람들과 더불어 살았으며, 사람들의 삶을 통제하고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F. 세스 싱글톤(F. Seth Singleton) 등의 주장은 "종교적 의미를 가진 사건들이 발생하고 그 사건에 마법 같은 설명이 적용되는 세계에서 은디 은수카는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은수카 사람들에게 에제 치토케(신이 대리하는 하느님)는 항상 존재했다(또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오스틴 J. 셸턴(Austin J. Shelton)은 '신은 인류를 통제하는 영적 존재'라는 은수카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받은 듯한 입장을 내놓았다. 그에 따르면, 우선 수호신으로서의 하느님은 인간으로부터 거리를 두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종종 추크우(Chukwu)가 본질적으로 하느님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조사 대상 지역에서는 신의 편재성은 사람들, 특히 원로들과 전통적 성직자들이 생활하고 숭배했던 영적인 대지인 알라(Ala), 아니(Ani) 또는 아나(Ana)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신은 너무나 만연한 현실이기 때문에, 일부 신자들은 그들을 '수호 성인'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가진 것을 성취하도록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신이다. 신의 편재성이란 신이 삶, 자유, 재산에 위험이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위협 또는 두려움으로부터 전통적 은수카 사회를 효과적으로 보호했음을 의미했다. 본 연구는 특별히 강력한 네 가지 신, 아도로(Adoro), 우베(Ube), 오헤 이무푸 에누구 에지케(Ohe Imufu Enugu Ezike), 오체기 오르바(Ochegi Orba)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본 연구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일부 다른 신들도 설명한다.



사회 통제를 대리하는 신

사회는 도전과제에 대한 대응을 통해 그 자신과 제도를 발전시킨다. 모든 공동체와 그 존재를 가능케 하는 제도의 성장은 그것을 압도하는 경험이 발생한 결과로 나타는 경우가 많다. 즉, 은수카 사회는 그것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일부 제도를 고안하고 수립했다. 그러한 제도 가운데는 족장 제도인 '에제(Eze)'가 있다. 찰스 킹슬리 미크(Charles Kingsley Meek)는 옛 은수카 지역(Nsukka Division)에 관한 보고서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이보족(sic)에게는 족장 개념이 이질적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은수카(sic) 지역의 이보족(sic)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족장에게 부여된 권한은 거의 없었으므로, 족장이라는 직함은 정치적 현실보다는 단순히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인 경우도 있었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 은수카 사회는 장로제 정부 시스템을 수립했는데, 이 시스템의 특징 중 하나는 신의 제도화였다. 신 제도는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인' 상태(homo homini lupus)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필요했다. 몇 해 전 셸턴은 은수카 사람들에 관한 저술에서 은수카 "이그보족은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유형의 가족 및 사회 문제에 대처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수립했다"고 주장했다. 신 제도는 이러한 배경에서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다. 이에 힘입어, 신들은 그들을 유지할 뿐 아니라, 수많은 신자들이 당면한 영적인 도전과제와 사회경제적 도전과제에서 구제와 위안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던 가장 중요한 가치를 부여 받았다고 생각되었다. 은수카 사람들은 신들이 다양한 종류의 영적인 힘을 보유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힘은 사람의 선악 여부에 따라 우호적으로 작용할 수도 적대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신들이 힘이 없고, 무력하며, 인간의 활동에 영향력이 없다는 기독교 신자들의 주장은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신들은 그들이 발견된 말을 훨씬 넘어서까지 힘과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대부분의 은수카 공동체에 "중앙집권적 정치 기구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신들은 꽤 넓은 지역에 걸쳐 고객들을 확보했다. 전통적 은수카 사회에서 사법(private law)와 공법(public law)의 영역 모두와 관련 있는 사건은 항상 신이 개입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살인, 납치, 절도, 독살, 불륜, 미혹(bewitching) 등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끔찍한 사건들을 신 앞에 가져왔다. 신은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범죄 행위는 신과 채무 관계를 발생시켜, 범죄자나 그 친척이 이 세상에서 처벌을 받아야만 그 관계가 해소된다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오늘날의 사법적 맥락에서 보면 신들이 내린 벌이 너무 극단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전통적 관점에서 그러한 처벌은 일반적인 것이었다. 다음은 이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오체게(Ochege, Ochegi)가 1964년 5월 19일 오바(Oba)(sic) 마을의 중앙 시장에서 유명한 전문 절도범을 처형했다. 이 절도범은 오바 주민들의 물건을 훔치고 오바 남성 1명을 살해하여 알루시(alusi)를 거역했다… 점괘에 따라, 절도범이 소유했던 모든 물건, 그의 아이들과 부인들, 소, 염소, 식품, 농지, 기타 재산은 알루시의 이름으로 아타마(attama, 사제)가 인수했다."
이러한 신은 극단적이고 원시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람들이 사회의 존속을 위협하는 비행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억지하는 효과가 있었다. 더욱이 범죄자는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당하게 되므로, 조상들로부터 단절될 뿐 아니라 스스로 조상의 지위를 얻지도 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은수카와 심지어 이그보랜드 전체에서도 그 정도로 불명예스러운 취급을 받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절도와 살인은 극악무도하고 심각한 범죄이다. 인간의 생명은 신성 불가침의 영역이라 인간들이 뺏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오체기 신은 인간사에서 펼처지는 이러한 사건들을 배경으로, 인간의 거친 본능을 길들이기 위해 적절하고 충분한 해결책을 제공했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행위의 지침이 되는 것으로 생각되는 '너는 잡히지 말라(Thou shalt not be caught)'는 개념이 전통적 은수카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피타 에지오포(Pita Ejiofor)는 서구법 체계에 관해 이렇게 언급한다. "대부분의 범죄 행위를 저지른 개인들은 어떠한 육체적 불편도 겪지 않은 채, 벌금을 내는 것만으로 그들이 사회에 대하여 저지른 범죄에서 자신을 지워버린다."

범죄자들이 처벌을 피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이러한 법 체계는 전통적 은수카 사회에서 지금까지 존재하는 체계와는 다르다.

특히 아도로 에로(Adoro Ero), 우베 이후노웨레(Ube Ihunowerre), 오헤 이무푸(Ohe Imufu), 오체기 오르바 등 대부분의 신은 그들의 영향력과 영적 권한을 이그보랜드 북부의 은수카 사회 너머까지 확장했다. G.T.바스텐(G.T.Basden)은 20세기 초에 이그보족에 관해 서술하면서 아도로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다. "아돌로(sic)라는 이름의 신은 이 지역(즉, 은수카 지역)에서 영향력을 갖는다. 그의 사제는 큰 존경을 받으며 상당한 영향력과 권한을 행사한다. 신께 바쳐지는 수많은 제물 덕에 사제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 또한 사제는 처형당한 사람들의 재산도 물려받았다. T.C. 은왈리(T.C. Nwali)의 설명에 의하면, 범법자들은 제물, 탄원, 선물을 통해 신을 달래야 한다. 이는 반사회적 행위를 속죄하는 것뿐 아니라 인간과 신 사이의 유대 관계를 확고히 하고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사제들이 상담료를 받아 생계를 꾸리는 우베족을 제외하고, 사제장과 그 제자들이 신의 재산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교훈적이다. 현재 우베족의 사원에는 처형당한 사람들의 소유였던 화폐(국내 및 외국 화폐)들이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도로와 관련해서는, 2011년 6월에 한 여성이 아도로가 희생자로부터 몰수한 것으로 생각되는 차를 구매한 일이 있었다. 그녀는 추후 그 차를 반납하고 아도로에게 배상까지 해야 했다. 신의 노여움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들 사이에 발생한 범죄 행위를 밝혀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신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그들 모두가 훔친 물품에 관해 신이 공표한 내용을 실행하는 처녀인 '느와다(nwada)'를 두고 있었다는(또한 지금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느와다는 범죄자가 훔친 물건을 원래의 소유자에게 돌려주는 역할을 했다.

모든 사회가 그렇듯, 은수카 사람들은 공동체의 공동 생활과 연대를 위해 개인의 사권(private right)과 자유를 인정하고 존중했다. 힘없고 가난한 취약 계층의 사람이 독살, 절도, 살인, 정당화될 수 없는 소지품 강탈 또는 기타 범법 행위의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사람들은 항상 신에게 탄원했다. 이는 이크포 음마(ikpo mma) 또는 아루시(arusi)라고 불리는데, 악인을 찾아내어 힘없는 사람들을 보호해 달라고 신에게 탄원하는 것을 뜻한다. 신은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함으로써, 법의 최후의 수호자이자 사회의 도덕률로서 명성을 얻었다. 사실 이는 느수카 이바그와 아니(Ibagwa Ani) 지역의 아마호르(Amahor) 마을의 사례에 전형적으로 나타났다. 2011년에 여러 차례 강도를 당한 한 과부가 몇 차례의 경고를 했으나 무시당하자, 우베 신의 영혼에게 기도를 드리는 이크포 아루시(ikpo arusi)를 택했다.

또 같은 해에 아마우체추크우 아지마(Amauchechukwu Ajima)의 집에 강도가 들어 8천 나리아의 금품을 훔쳐갔다. 그녀의 아그보(Agbo)족 친척인 아쿠마 이바그와 아니(Akuma Ibagwa Ani)는 범죄자의 신원을 밝혀내지 못했다. 따라서 그녀는 우베 신에게 호소하게 되었다. '상상임신'을 한 우베 신의 여제자가 범인에게 28일간의 유예기간을 주며, 훔쳐간 돈을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했다. 유예기간이 끝난 날, 범인인 아마우체추크우 우구(Amauchechukwu Ugwu)가 오볼로 아포르(Obollo Afor) 마을을 지나자마자 아부자(Abuja)로 가는 차 안에서 끔찍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또한 범인의 가족은 신을 달래기 위해 150만 나디르를 내놓아야 했다. 신이 가족들에게 복수를 계속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우베 신은 억압과 비행에 특징적인 접근법을 취하여 이바그와 아니 사건의 범인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들은 이그보랜드 은수카 지역에서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강력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수년간 신들은 특정한 범죄에 대하여 유죄로 밝혀진 사람들을 벌하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자신의 권리와 재산을 침해한 것에 대하여 처벌을 청원하는 사람들이 우베와 같은 신에게 가야 했다. 우베 신은 범죄자들이 스스로 목을 메게 하도록 긴 밧줄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2016년 10월 에지아니 은수카(Eziani Nsukka)에서 두 청년이 목을 메어 자살했는데, 이는 우베 신의 복수 때문이었다. 따라서 신들은 강자가 약자와 빈자에 대하여 저지르는 범죄와 억압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더욱이 신들은 아버지의 죄를 자식에게 묻기도 함으로써 어느 정도 사회적 질서, 정의, 조화를 실현했다. 자식들에게 신의 노여움이나 분노가 미치기를 바라는 아버지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U.M. 이그보(E.U.M Igbo) 등도 이러한 관점에 동의하며, "신의 영향력은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고 심각한 범죄행위에 참여하고자 하는 성향을 억제하며, 이를 통해 공동체에서 범죄에 대한 강력한 억지력으로 기능한다."



사회적 양심으로서의 신

신 제도는 많은 부분에서 은수카 사회의 공동체적 존재를 설명한다. 대부분의 이그보족 하위집단과 마찬가지로, 은수카 사람들이 대규모의 국가 체계를 보유하지 못했다고 해서 무법과 혼돈이 만연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인간 조직과 마찬가지로 은수카 사회도 문제가 없지는 않다. 신은 은수카 사회의 사법 체계를 보완해 주었다. 신은 사람들 간의 사회적 일탈 행위를 혐오할 뿐 아니라, 사람 간 및 마을 간 관계를 증진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부채 상환, 토지 소유권, 이혼, 경계 분쟁, 약자와 그들의 재산 보호, 기혼 여성의 방종함 등을 해결하기 위해 항상 신의 도움을 구했다.

선서는 이러한 전통적 법학 체계에서 고발된 사람의 유무죄를 입증하는 주요 방법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선서를 한 사건에 대하여 처벌 또는 기각이 결정되는데 소요되는 기간은 사건의 성격에 따라 1달(28일)에서 1년까지 다양하다. 예를 들어 민사 또는 형사 사건의 경우에는 1달이지만, 복잡한 경우가 많은 토지 사건은 1년이 꼬박 걸렸다. 이는 선서의 대상이 된 신이 진실을 규명하고 누구에게 죄가 있는지를 밝혀내기 위해, 사건의 세부 사항을 철저하게 조사하도록 하기 위한 시간이다. 증거가 불충분하거나, 관련 당사자들이 제출한 증거의 진실성이 불확실하거나 의심되는 경우에만 선서를 하게 된다. 선서를 통해 양 당사자가 모두 공정한 심리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신들은 선서를 통해 사람간 및 집단의 관계를 확립함으로써, 그들이 활동할 틈새 영역을 만들어 낸다. 그 결과, 그들은 이그보랜드 너머에서도 명성과 인기를 누린다. 우도바타 R. 오누완다(Udobata R. Onunwa)는 최근 연구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심지어 이그보랜드 외부에서도 사람들이 알로르-우노(Alor-Uno)에 있는 아도로의 사원에서 선서를 하기 위해 은수카로 찾아온다. 아도로 여신은 자신에게 거짓으로 맹세하는 사람은 누구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도로의 사원 주변에는 가계 재물(sic)이 가득하다. 모두 거짓 선서를 하고 처형당한 사람들이 소유했던 물건이다. 거짓 선서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개인 소지품들은 아도로의 사원에 가져와 그곳에 두어야 한다."

또한 그렇게 처형당한 사람들의 시체는 아도로의 땅에 묻혀야 한다. 최근에는 값을 치르고 시체를 돌려받을 수 있게 되었으나, 그렇더라도 머리는 돌려받을 수 없다. 머리는 아도로의 대리인이 밤에 시체를 파내어 잘라간다. 은수카에서 그렇게 불명에스러운 죽음에 수반되는 수치와 낙인으로 인해 명예와 명성을 잃는 것을 쉽게 용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처형당한 사람을 위한 적절한 매장 및 장례 의식을 치르기 위해서는 '이그베레(igbere, 이갈라어로는 이그발레(igbale))'라고 하는 처녀를 바쳐 신을 달래야 한다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이렇게 특별히 강력한 신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그들과 사제들이 일상적으로 필요로 하는 일을 수행하는 이그베레들을 얻게 된 것이다.

부채 상환은 은수카 사회에서 신들이 약자의 필요를 충족해주는 영역 중 하나로 생각된다. 은수카 지역에서는 일부 채권자들이 신에게 부채 상환을 탄원하는 대한 절차를 밟았다. 그 결과, 돈을 갚지 않으려 하는 채무자들이 어느 신에게든 끌려오게 되었다. 이는 조작의 여지를 주지 않는 신이 판결한 사례는 정의롭고 공정하다는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다. J.S. 오베타(J.S. Obeta)는 이러한 체계는 "이른바 현대 법 체계 하에 있으므로 허점이 없다"고 설명한다. 한 정보제공자는 우후노웨레의 우베 신을 나이지리아의 반부패기구인 경제·금융범죄위원회(Economic and Financial Crimes Commission, EFCC)와 같다고 농담을 했는데, 이는 정확한 비유이다. 악성 채무를 상환하도록 하는 방식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한 상환 약속을 지속적으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우후노웨레는 장마법 같은 힘을 행사한다.

이는 2010년에 지역교육청장이 사망한 사건과 2016년 한 학교장이 사망한 사건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안셀름 오도(Anselm Odo)에 의하면, 교육청장은 엠마누엘 우구에제(Emmanuel Ugwueze)로부터 53만 나이라를 빌렸으나, 채무 상환을 거부했다. 추후 그의 채권자는 우베 신 앞에 그 사건을 탄원했다. 우베 사제들이 부여한 28일의 유예기간이 끝난 후 이 채무자의 삶은 끝났다. 기독교 교리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학교장 역시 그가 탄 차를 신원을 알 수 없는 소녀가 가로막으면서 이해하기 힘든 죽음을 맞았다. 위의 내용을 볼 때, O.B.C. 은올리세(O.B.C. Nwolise)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오크자(Okja)의 오그우구 아크푸(Ogwugwu akpu)에 관한 이야기는 이러한 신들이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감정을 느낄 때는 그들을 보호해 주지만, 화가 나면 사람들의 안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고 했다.

이러한 사망 사건들은 자연사처럼 보이지만, 사망 시점을 보면 신의 개입이 드러난다.

토지와 경계에 관한 분쟁이 너무 심각해져서 소송 당사자의 주장에 의심이 제기되는 경우, 사람들은 공정하게 판결을 내리는 신들을 불러냈다. 생계가 농업에 달려 있는 농경 사회에서 살아가는 은수카 사람들에게 토지는 분명한 존재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토지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공동체 갈등의 원천 중 하나였다. 이러한 신들을 '수호 성인'으로 삼는 사회의 일부 취약 계층은 심지어 그들의 생명과 재산을 이들 신에게 헌납하면서 신의 보호를 요청했다. 신의 행위는 법과 질서를 위협할 수 있는 갈등의 영역을 줄여주었을 뿐 아니라, 사람들 및 집단간의 관계를 향상하고 사회의 존속을 위해 필요한 통합을 강화했다. 이러한 전제 하에, 은수카 공동체의 법 집행은 종교적 처벌과 불가분의 관계로 생각되었다. 신들은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하여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은수카의 사회 환경에서 불륜은 금지되어 있을 뿐 아니라, 땅의 여신인 알라(Ala) 등 강력한 힘을 가진 심들이 극히 혐오하는 행위이다. 특히 에누구 에지케(Enugu Ezike), 오볼로(Obollo), 이밀리케(Imilike) 등 대부분의 연구 대상 지역에서 불륜은 불륜 여성의 남편에 대한 심각한 피해로 인식되었는데, 이는 그것이 대지의 여신을 거스르는 행위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는 '은소 알라(nso ala)', 즉 혐오스러운 행위였다. 불륜을 저지른 여성이 자신의 부정을 자백할 때, 상대 남성은 신들을 달래기 위한 제물을 제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은수카의 옛 교구 중 하나에서는 1990년 12월 30일에 불륜을 저지른 한 기독교 목사가 신들에게 제물을 바쳐야 했다. 이 의식은 우무이데케(Umuideke) 가문의 오니이시(Onyishi, 연장자) 인 펠릭스 아바(Felix Abah)가 주재했다. "E.응우케(E. Ngwoke)에 따르면, 그러한 제물을 바치는 가장 큰 이유는 오염, 즉 은소 알라에 대한 위반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심각한 오염은 혐오라고 지칭되며, 이는 공동체 전체를 위협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들은 불륜을 저지른 여성을 벌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문란과 부도덕을 억제할 수 있었다. D.U. 오파타(D.U. Opata)도 이러한 관점을 갖고 있다. 그는 "그러한 체계가 존속하는 동안은 사람들의 도덕성이 현재보다 훨씬 높았다"고 했다. 신들이 은수카에서 결혼 제도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으므로, 그들은 이혼에도 개입했다. 이혼 소송이 종결되기 전에 양측은 이그바 은두(igba ndu)라는 협약을 체결해야 했다. 양측은 신의 이름으로 선서하여, 전 배우자와 그 친척에게 피해, 부상 또는 사망을 초래하거나 그들의 재산에 손해를 입히는 여하한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J.S. 음비티(J.S. Mbiti)는 "이러한 선서가 양 당사자에게 큰 도덕적 및 신령스러운 의무를 부과한다. 또한 이러한 약속을 위반하는 것은 불행을 초래할 수 있는 매우 두려운 일로 생각되었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이러한 관습에 관한 설명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신들이 진실과 사회적 양심에 대한 최고의 보증인으로 생각된 이유를 보여준다.



계속성과 변화

일반적으로 말해 은디 은수카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었으며(또한 여전히 그러하다), 이는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싹을 틔우고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예상과는 달리 기독교는 전통적 종교에 동반되는 오노녜(ononye)가 아니라, 그것을 대체하는 오노키에(onochie)로 도입되었다. 기독교는 이그보랜드에 처음 들어오자마자, 아프리카 전통 종교와 그 모든 영성을 잊혀지게 만들기 위한 암암리에 노력했다. 즉, '나쁜 세입자'가 들어와, 협조적이고 우호적인 '집주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를 파괴하고 대체하려 적극적인 노력을 펼친 것이다.

기독교의 교리와 가르침은 신도들에게 전통 신들을 무시하라고 가르치며, 이로 인해 기독교와 아프리카 전통 종교 간에 냉담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그래서 이그보족은 초기 기독교를 '이간질하는 사람'을 뜻하는 '은디 오쿠 누카(ndi okwu n' uka)'라고 불렀고, 여기서 '기독교인'을 뜻하는 '은디 우카(Ndi uka)'라는 단어가 파생했다. 일부 극성스러운 기독교인들의 활동, 특히 신들에 대한 불경한 주장은 전통 신들은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며 그 존재가 의심스럽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에드몬드 일로구(Edmond Ilogu)와 같은 일부 학자들의 의견에 영향을 준 듯하다. 일로구는 "학교 교육, 기독교, 식민지 관리청(Colonial Adminisration) 등으로 인한 현대화의 영향으로 은수카에서 그로테스크한 이보(sic)족의 전통적 종교 관행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기독교계 학교를 통해 대대적인 개종이 이루어졌고, 이는 이그보족이 기독교와 서구화에 따른 생활 방식을 받아들이기 위해 전통적 삶의 방식을 버렸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I.R.A 오지그보(I.R.A. Ozigbo)는 "면밀히 관찰한 결과, 이그보족이 변화할수록 신은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기독교 개종자의 급증은 반드시 기독교에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니며, 기독교가 제공하는 교육이 더 나은 생활에 대한 밝은 전망을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일부 개종자들을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갔고, 지금은 전통 신앙을 방어하고 있다. 은수카 지역의 신들은 새로 도입된 종교, 즉 기독교의 조직적인 공격을 받았지만, 흥미롭게도 그 존재를 계속 유지했다. 전통 신을 믿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지만, 일부 명목상의 기독교인들은 삶에서 어려움을 맞닥뜨리면 전통 신을 찾았다. 그러한 기독교인들에게 새로운 믿음은 피상적인 연막에 불과하다는 점은 명백하다.

조사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신의 영향력과 그들에 대한 후원이 감소했다는 주장 역시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수년간 유명 기업가, 정치인, 목사, 변호사, 경찰관, 군인, 불의의 희생자들이 신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선물을 바쳤다. 이들은 자신이 성공한 것은 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그래서 스스로를 신의 '군대'로 간주한다. 그러면 신은 매년 말에 그에 대한 보답을 해 준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전통 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이들 중 대부분은 '낮에는 기독교인(day-light Christian)'으로 '회수가 불가능한 빛'으로 여겨지는 것을 받아내기 위해 신을 불러내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다. 더욱이 범죄와 불안감이 점점 확대되면서 범죄자를 벌하도록 신의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의 수가 꾸준히 증가했다.

사람들의 사회 생활에 대한 신의 영향력은 일부 극렬한 기독교 신자들의 오해를 불러 일으켜 공격을 초래했다. 신들은 부정한 여성과 같은 범죄자의 처벌할 때 시간과 공간에 전혀 구애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전통적인 종교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으며 전통 신들이 불륜에 대하여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일부 여성들은, 실제로 신들에 대한 공격을 옹호했다. 이러한 공격이 나타난 전형적인 사건은 1994년 응고지 오그부(Ngozi Ogbu)와 그의 추종자들이 아도로 신전에서 신을 상징하는 인형들을 파괴하고 불태운 사건이다. 이러한 극렬 기독교인들은 전통 신이 영령이며, 따라서 무한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러한 행동은 이그보족의 자연 종교에 관해 초기 아일랜드 선교사 중 한 명인 조셉 샤나한(Joseph Shanahan) 주교가 제시한 관점과는 달랐다. 샤나한 주교는 "(신의 형태로 나타나는) 이그보 전통 종교에 필요했던 것은 변혁이며, 파괴가 아니었다"고 했다.

식민 통치자들이 확립한 서구의 사법제도는 의도치 않게 전통주의자들 사이에서 영령의 영향력과 사법적 기능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전통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회에서 나이지리아 대학을 설립한 것 역시 은수카에서 통용되는 토착 법률 체계에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요인들이 도입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보상(redress)을 위해 보다 '현대적인' 법률 체계를 수용하게 되었다. 하찮은 일에도 법의 판결을 신청하여 불필요하게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나 새로운 법 체계 하에서 발생하는 높은 소송 비용, 잦은 연기, 정의의 왜곡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이전의 체계를 계속 유지해야 했다. 이는 새로운 체계가 허용하는 "인위적 타협으로는 사회에서 억압 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감정을 달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때 늦은 정의는 실현되지 못한 정의'이라는 격언에서 이러한 관점이 드러난다. 이는 기독교와 그 협력자인 사법제도가 오랫동안 은수카에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수의 은디 은수카 사람들이 신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법 체계에 애착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최근 몇 년간 신의 분노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의 대부분이 다양한 교파에 속한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은 상당히 우려스럽다.

은수카의 일부 신들과 관련하여 한 가지 눈에 띄는 변화는, 한때 기독교 공동체에 속했던 사람들이 이제 신들의 사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고 일부 신들의 전통 사제(아타마)가 된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제사장들 중에는 이헤아카(Iheaka)에 있는 이데니 우구 아구(Idenyi Ugwu Agu) 신의 아타마인 '아돌푸스 아케레(Adolphus Akere)', 그리고 또다른 기독교인 출신 아타마를 계승하여 이무푸 에누구 에지케(Imufu Enugu Ezike)에서 활동하는 오헤(Ohe) 신의 아타마가 된 피델리스 알리(Fidelis Ali)가 있다. 오르바(Orba)의 오체기 신에게는 기독교인 출신 제사장이 줄을 이었다. 직전의 제사장은 존 에제마('John Ezema) 족장이었고, 현재 제사장은 마티아스 오니시(Mathias Onyishi)이다. 또한 아마니 오르바(Amanyi Orba)의 사제는 브렌든 에즈(Brendan Eze)인데, 이들 모두가 과거에 침례교도였다. 정말 새로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전통 신들의 방식과 수용성에 젊은 에너지와 기독교의 영향을 미쳐, 더 많은 사람들이 '다시 전통 신에게 돌아오도록' 했다.

이러한 제사장들 중 일부는 한때 은디 우카(기독교인)가 기독교 부흥과 복음전도의 과정에서 조직한 신 반대 운동의 선봉에 서기도 했던 사람들이었다. 또한 현대의 기술 문화 역시 일부 신들의 광범위한 영향력에 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영적 영향력은 이제 지리적 한계를 넘어 이그보랜드 외부의 마을까지 미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신들은 은디 은수카와 이웃 부족간의 통합을 강화해 주었다.



결론

본 연구는 은디 은수카가 어떻게 기독교에 대한 수용성과 자기 보존과 생존을 위한 자연적 본능 사이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는지에 관하여, 충분히 일관성 있고 논리적인 설명를 제시하고자 했다. 은디 은수카에서 신탁의 힘을 지닌 신들은 평화 공존, 결속력, 사회 정의 실현에 서구 사법체계보다 더 크게 기여했다. 그들의 관할권은 계약 위반에서부터 불법 행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했다. 본 연구는 신들이 신도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직접 처벌과 보상을 내린다는 점을 강조한다. 바로 이것이 그들이 두려움과 숭배의 대상이 되는 이유이다. 다시 말해서, 신은 위험에 대한 위협이나 두려움, 또는 생명, 자유, 재산에 대한 피해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한다. 또한 최근 수년간 비타협적인 채무자가 채무를 상환하도록 하는데 효력을 보였다. 같은 방식으로 신은 갈등을 해결하고, 정의의 정신에 입각하여 관습법을 집행했다. 반면에 기독교는 전통적 질서를 효과적으로 약화시켰다.

도덕적 타락과 사회 가치체계의 약화가 계속되는 현상은 기독교의 하느님이 사람들의 삶에서 전통 신과 같은 기능을 수행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이다. 사회의 도덕성이 약화된 오늘날, 사람들은 도덕적 교훈을 포기하고 물질적 이득을 추구한다. 이러한 시대에 신들은 사건의 발생을 억제하고 조화로운 관계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신들은 은소 알라를 혐오하면서 기혼 여성들에게 절제력을 심어주었다. 반면에 기독교는 보다 타협적인 입장을 취하는 듯하다. 일부 기독교인이 십자군 전쟁에 나서는 전사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들이 아프리카 전통 종교의 환대와 동지애에 항상 감사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아도로 에로와 아무피에 에누구 에지케(Amufie Enugu Ezike)의 알룸(Aluum)에 대항하는 캠페인을 주도한 사람들은 미스터리한 죽음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험은 신도들에게 신이 힘없고 늙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한편, 일부 기독교인들은 이를 이상한 관점이라고 표현한다.

또한 본 연구는 전통 신들은 공격을 받고 상처를 입었지만, 유명 정치인, 사업가 및 여러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지속적으로 후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한 후원자들은 대부분 기독교이다. 즉, 낮에는 교회에 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중적인 정체를 숨기며 밤에는 전통 신을 후원하며, 만일을 대비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수년간 많은 갈등과 타협이 발생했다. 이는 한때는 두 종교의 지지자들이 불화가 심했지만, 또 다른 때는 그들 중 일부가 다른 편으로 넘어가곤 했기 때문이다. 두 종교 사이에는 신도들과 관련하여 '주고 받기'의 정신이 존재하는 듯하다. 따라서 신들은 적대관계에 있는 종교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력한 영적 제도로 볼 수 있다. 전통 신들은 현재 기독교 공동체에서 많은 고객들을 끌어오고 있으며, 그 중에는 신들이 거주하는 마을 밖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전통 신은 죽었으며 활동하지 않는다는 기독교인들의 주장과는 달리 은수카에서 아프리카 전통 종교와 신은 여전히 건재하다고 추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