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드와 파릴: 필리핀 세부의 전통적 토양·용수 보존 시스템

Writer : Zona Hildegarde Saniel Amper, Ian Dale Rios, Vincent Ace Caumeran, Ruel Javier Rigor and Teresita Cleopolda Sarile
Year : 2018


개요

농업 유산은 농경과 작물 생산에 관련된 관습, 신념, 가치관을 포괄하며, 이러한 요소들은 모두 직접 경험과 기타 비공식적 수단을 통해 대대로 이어져 온 것이다. 본 논문은 돌담(파릴, paril)을 활용하여 토양과 용수를 보존하는 계단식 농업 유형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이러한 농업 유형은 필리핀 세부(Cebu)에 위치한 유명한 유산 마을 아르가오(Argao)의 고지대 바랑가이(barangay)에서 전통적으로 수행된다. 본 논문은 이러한 농업 유산과 관련 의식, 신념, 전설의 다양한 측면을 검토한다. 돌담의 축조와 보수를 위한 지식, 그리고 전설에 바탕을 둔 의식의 연행과 그 의미는 이러한 농업 유산의 무형적 측면을 보여준다.


서론

필리핀 중부에 위치한 세부 주 남동부의 아르가오 마을은 마을 중심부에 밀집한 스페인 식민시대 건물 등 문화유산으로 유명하다. 또한 이 마을은 '토르타(torta)'라는 이름의 독특하나 패스트리와 현지에서 직조하는 하블론(hablon, 직물의 일종)으로도 유명하다. 이는 모두 수세기에 걸쳐 대를 이어 전해진 관습의 산물이다. 또한 이 마을에는 수세기를 이어 온 카톨릭 의식과 관련된 무형문화유산이 존재하며, 그 중 하나는 매년 5월에 행해지는 전통적인 플로레스 데 마요(Florres de Mayo) 축제이다. 원래 이 축제에는 주로 어린이들이 참여했지만, 2000년 한 교구 사제가 그 방식을 급격하게 변화시켰다(Amper: 2015).

아르가오 해안 및 고지대의 자연유산 역시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아르가오의 고지대 바랑가이에서 비학술 조사를 실시한 결과, 산비탈을 계단식 지형으로 만드는 독특한 농업 전통이 확인되었다. 아르가오 고지대에 위치한 바랑가이 타바야그(Barangay Tabayag)의 농민들은 경작지를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파릴(돌담)을 사용해왔다. 이 땅을 최초로 경작한 선구자 농민들의 자손들이 기억하는 바에 따르면, 이러한 관습은 스페인 식민지 시대 후기 또는 19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에서는 옥수수를 주로 재배하지만, 때로는 생강, 양파, 기타 채소 등 다른 작물도 재배한다.

본 연구는 지역사회 농민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이야기, 관계, 상징에서 나타나는 현지의 토양 및 용수 보존 기술 관련 지식을 기록한다. 또한 이러한 전통적 농업 시스템에 존재하는 자연과 문화의 접점을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본 연구는 파릴을 사용하는 관습이 처음 시작된 시점부터 현재까지의 발전 과정을 기록하고, 이 관습과 관련된 중요한 사람들과 사건을 기술한다.


배경

필리핀 경제는 여전히 농업 중심으로, 인구의 대부분이 농촌 지역에 거주하며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주요 농작물은 쌀, 옥수수, 코코넛, 바나나 및 기타 과일, 사탕 수수, 담배, 아바카(abaca)이다. 지리적으로 필리핀 중앙에 위치하는 비사야스(Visayas) 지역의 세부(Cebu) 주 역시 농업 생산에 의존한다. 세부 섬은 길쭉한 모양을 하고 있어, 섬 안의 모든 도시에 해안 지역과 고원 지대가 함께 존재한다. 해안 지역 주민들은 주로 어업에 의존하고, 고지대 주민들은 농업에 의존한다. [그림 1과 2].

아르가오 군(municipality)은 세부 주도에서 남동쪽으로 6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주로 농촌 지역으로 분류된 45개의 바랑가이로 구성되어 있는 1선 군(first-class municipality)이다. [그림 3] 아르가오의 육지 지역의 상당 부분은 산악 지형으로, 대부분 산세가 험하다. [그림 4] 세부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 중 하나로 여겨지는 아르가오는 풍부한 유산으로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마을 중심부에는 스페인 식민 시대부터 관청이 위치했던 카베세라(Cabecerra)가 있다. 이곳에서는 19세기 초에 세워진 기와지붕 마을 회관, 18세기에 세운 석조 바로크 양식의 교회, 역시 18세기 만들어진 요새를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아르가오의 산악 바랑가이들은 풍부한 농업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바랑가이 타바야그는 쌀, 옥수수 및 생존을 위한 식량 작물 생산을 위한 오래된 농업 기술을 활용하여 파릴 농경을 한다. 타바야그는 포블라시온(Poblacion)에서 오토바이로 약 45분 거리에 위치한 바랑가이로, 프로퍼(Proper), 어퍼(Upper), 피온고트(Piongot), 비날라바그(Binalabag), 수야크(Suyak), 난토이(Lantoy), 카발라완(Kabalawan) 등 총 7개의 시티오(sitio)로 구성되어 있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타바야그의 인구는 894명으로, 2010년의 999명에서 감소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농사를 짓기보다는 도시에서 일하는 편을 선호함에 따라 타지로 인구가 유출되는 것이 인구 감소의 원인 중 하나이다(Baragay Profile: 2014). 타야바그는 상대적으로 건조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수많은 파릴이 축조되어 있다. 석조 구조물인 파릴은 1800년대 말~1900년대 초 또는 그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지역에는 고정적인 관개 용수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은 선조들이 물려준 농업 시스템인 파릴을 활용하여 약 4세대에 걸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파릴: 전통적 토양·용수 보존법

파릴은 두 언덕 사이에 지어진 돌담 구조물로, 산비탈에서 침식된 토양이 홍수에 쓸려가지 않고 모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침식된 토양이 점차 돌담 사이에 모여 다타그(datag)라 불리는 평야를 형성한다. 다타그는 농경을 위한 충분한 공간을 제공하며, 그 면적과 규모는 토지의 윤곽에 따라 위치마다 다르다. 성인 평균 신장보다 높은 파릴과 축구장만큼 큰 다타그도 있다. 이들은 수 세대동안 존재해 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현대 농경 방식과 함께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파릴은 농업에서 그 중요성을 유지해 왔으며, 과거의 사람들이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한 독창적인 농업 기술로 평가받는다. 초기 개척자들은 이러한 기술과 관련 가치관 및 신념 체계를 다음 세대에게 성공적으로 전달하여, 현재까지도 이어지도록 했다. 그러나 천주교와 정규 교육이 도입되면서 자연의 영령에 대한 믿음이 약화되었고, 또한 농업이나 환경과 관련된 전통 의식의 연행이 감소했다. 또한 젊은 세대가 농업을 계속하기보다는 도시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함에 따라, 누가 이러한 농업유산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고 있다.


건축과 기능

파릴의 축조 방법은 그것을 만든 초기 개척자들의 후손이 들려주는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파릴은 특정 장소에 돌을 쌓아 올려 만든 것이다. 큰 돌은 아래에 놓고, 중간 크기의 돌은 꼭대기에 올렸다. 빈 곳은 작은 돌로 메꾸었다. 돌담을 쌓은 개척 농민들은 돌 사이의 틈을 최소화하도록 신중하게 돌을 골랐다.[사진 1] 이 돌담은 빗물이 모여 만들어진 하천이 흐르면서 산비탈의 표토를 침식시키는 협곡 지형에 전략적으로 세워졌다. 이것은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경사면의 토양을 보존하기 위해 현지의 단순한 공학 기술을 활용하여 만든 구조물이다. 이 돌담 구조물은 폭우가 발생할 때 언덕과 산에서 쓸려 내려가는 귀중한 토양을 모은다는 구체적인 목적에 맞게 설계되었으며, 이에 따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토양이 축적되어 작물 재배에 적합한 비옥한 평야가 만들어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축적된 토양은 점점 커지고 깊어진다. 그렇게 커진 토양이 돌담을 범람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오래된 돌 위에 새로운 돌을 세심하게 쌓았다. 이러한 기술은 현지어로 툼피-툼피(tumpi-tumpi)라고 하는데, 이후 세대들도 필요할 때마다 이러한 기술을 활용하여 돌을 쌓았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돌담은 더 높아지고, 다타크의 면적은 더 넓어진다. 이에 따라 다타그 위에 또 다른 돌담이 세워지게 될 것이며, 결국 시간이 흐르면 계단처럼 생긴 일련의 평원 또는 다타그가 만들어진다. [사진 2] 한 정보제공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돌! 큰 돌이죠... 우리는 큰 돌을 쌓습니다. 그러면 홍수가 날 때 토양이 서서히 모이게 되죠... 그리고는 충분한 토양이 모여 넓은 평지가 만들어질 때까지 돌 더미를 추가로 쌓습니다." 이 작업은 주로 나이든 농부들이 수행하며, 그 자녀들은 쌓아 올릴 다양한 크기의 돌을 모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젊은 세대는 관찰과 연습을 통해 적절한 크기의 돌을 고르는 것부터 돌을 쌓아 올리는 방법까지, 툼피-툼피 방식을 배우게 된다. 아이들은 부모나 조부모의 툼피-툼피 작업을 돕는 과정에서 그 방법을 배운다. 그 아이들이 자라 다타그에서 농사를 짓게 될 때면 이러한 지식과 기술이 유용하게 쓰이며, 이를 통해 이 관습의 연속성이 보장된다. 이들은 또한 추후 자신의 자녀들을 가르치게 된다.


초기 개척자들

주로 주요 정보제공자들로부터 수집된 정성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볼 때, 파릴은 1900년대 초에 축조된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정보제공자들이 파릴의 발전에 기여한 친족들을 두 세대 이전까지 추적 및 식별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파릴이 실제로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다. 한 정보제공자는 파릴 유산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할아버지... 그리고 어쩌면 할아버지의 조부모님이 만든 것일지도 모릅니다. 할아버지의 청소년 시절에도 이미 파릴과 다타그가 존재하고 있었으니까요. 토양이 축적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시대에 파릴 축조가 시작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나는 할아버지만 알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모르니까요."

그러나 이조사에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발견되었다. 호아킨 아로보(Joaquin Arobo)의 손자인 마르셀로(Marcelo)와 심플리시오 아로보(Simplicio Arobo) 형제가 중요한 정보제공자 역할을 했다. 호아킨 아로보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형제 두 명과 함께 바랑가이 타바야그에서 이 시스템을 개척했다고 한다. 호아킨 아로보와 그의 가족은 원래 달라게테(Dalaguete, 아르가오 남쪽에 위치한 마을) 출신이었는데, '더 푸른 목초지'를 찾아 아르가오로 이주했다. 마르셀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달라게테에서 이 곳으로 처음 이주해 온 사람은 우리 할아버지였습니다. 할아버지와 가족들은 처음에는 파야한(Payahan)에 살았지만, 카발라완(Cabalawan)에 있는 타야바그에 비옥한 땅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이곳으로 온 것이었죠. 당시 이곳의 토양은 매우 비옥했고, 할아버지는 심지어 쟁기도 사용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파릴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가 만든 것이니까... 아버지가 태어난 해인 1922년경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다른 정보제공자인 디오스코로 레만도(Dioscoro Remando)는 그의 아버지 세베리노 레만도(Severino Remando)가 큰 염소를 한 마리 주고 '호아킨'이라는 사람으로부터 파릴이 포함된 땅을 샀다고 했다. 이는 호아킨 아로보가 바랑가이 타바야그의 시티오 카발라완에서 가장 먼저 파릴을 축조한 사람 중 하나였을 수 있다는 주장을 입증해 준다.


역사적 변화와 발전

초기 개척자들은 경작 등 지속적인 농경 활동과 계절적 강우로 인해 산비탈의 토양이 침식된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이로 인해 결국 토양이 얕아지고 돌만 남게 되어, 한때 비옥했던 토지가 사용하기 어려운 땅이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토양이 강으로 쓸려내려 가지 못하게 막고 한 곳에 모을 수 있도록, 빗물이 자연적으로 흐르는 협곡에 돌담을 세웠다. 초기 개척자의 손자 중 한 명은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파릴 개발 초기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전해주었다.

"할아버지가 캄바레스(Cambares)에 있는 카발라완에 정착했을 당시에는 땅이 매우 비옥했습니다. 그 땅에서 할아버지는 경작을 계속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경사면 아래 묻혀 있던 돌이 지표면으로 드러났고, 돌 때문에 경작을 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 지역에 가보면 경사면에 많은 돌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러나 파릴을 만들자 침식된 토양이 경사면 기슭에 모여, 농작물을 심을 수 있는 평야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비옥한 다타그는 경작지로 활용되었다. 따라서 당시에는 현지어로 아부노(abuno)라고 하는 화학 비료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닭, 소, 카라바오(carabao), 돼지(haypan) 등 가축의 분뇨나 폐기물만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져, 비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농작물이 생존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마도 휴경 기간 없이 경작을 계속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지역 농부들에게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을 준다. 한 정보제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는 토양이 이미 비옥했기 때문에 비료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이제 비료가 없이는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하거든요. 나는 비료를 사용하고, 그래서 자금이 빠듯합니다. 그래서 비료 사용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초에 정부 주도로 새로운 농업 기술이 등장했다. ‘등고선 농경(contour farming)’이라는 것으로, 현지어로는 ‘새로운 방식’을 의미하는 ‘박-옹 파마기(bag-ong pamaagi)’라고 불렸다. 세부 소재 비 정부기구(NGO)인 ‘토양·수자원 보존 재단(Soil and Water Conservation Foundation)’ 소속의 미국인 빌 그래닛(Bill Grannet)이 도입한 이 기술은 에이-프레임(A-frame)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산비탈의 경사면을 계단 지형으로 개조하며, ‘경사지 농지 기술(Sloping Agricultural Land Technology, S.A.L.T)’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이러한 현대 기술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파릴은 여전히 제 기능을 수행하며 농업에서 중요성을 유지하고 있다. 등고선 농경은 파릴과 마찬가지로 경작 공간을 만들어주며, 그 공간이 만들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등고선 농경으로 만들어진 평야는 전통적인 파릴으로 만들어진 것만큼 넓지 않으며, 작물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다량의 비료가 필요하다. 비료 사용은 지역 농부들에게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이 된다. 한 정보제공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수확량이 많아도 비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실제 수입은 적습니다. 등고선 농경은 파릴과 달리 대량의 비료를 필요로 하니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파릴은 수 세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이러한 발전은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초기 개척자들은 자연 환경과의 깊은 상호 관계를 바탕으로 유한한 자연자원의 역동적인 특성에 보조를 맞출 수 있었다. 그 결과, 그들의 기본적 필요에 맞게 점차 환경을 변화시켰다. 파릴은 명백히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


파릴의 관리와 유지

파릴의 축조 기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년 내내 적절한 관리 및 유지보수가 수행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경작지 공급’이라는 파릴의 일차적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파릴에서도 큰 손상은 작은 문제에서 비롯되며, 그러한 문제는 방치로 인해 발생한다. 돌 벽에 작은 틈이나 균열이 있어 파릴에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되면, 균열이 악화되지 않도록 즉각적으로 돌담을 복원 또는 수리해야 한다. 한 정보 제공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에 아버지는 손상된 부분이 발견되면 즉시 수리를 했습니다. 수리를 하지 않을 경우, 홍수가 나면 파릴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리를 하지 않으면 파릴은 마치 수로처럼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정보 제공자는 심지어 파릴을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 돌을 적절한 위치에 놓지 않아 파릴이 쉽게 무너졌기 때문에, 아예 다시 쌓았습니다.” 한 정보 제공자에 따르면, 2013년 10월 지진이 발생한 이후 파릴이 부분적으로 손상되어 수리가 필요했다. 그러나 파릴의 소유주 중에는 손상된 파릴을 수리하는 방법을 모르는 젊은 세대도 있었다. 손상된 부분을 즉시 수리하지 않으면, 파릴이 점점 약화되어 결국 파괴될 수 있다.

또한 파릴의 가장자리를 따라 벙갈론(bungalon)이라고 불리는 네이피어그라스(napier grass) 등의 식물을 심는 관습도 있다. 이렇게 하면 식물이 토양과 돌을 단단히 고정시키고 다져 놓아, 폭우와 홍수가 닥쳐도 파릴이 무너지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상 가장 쉬운 유지관리 방법은 파릴과 다타그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다. 조상이 물려준 집에 아무도 살지 않으면 집에 문제가 생겨도 아무도 알 수 없듯이, 파릴도 그렇다. 그러나 파릴을 물려받은 사람들 중에는 나이가 많이 들어 더 이상 스스로 관리를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파릴을 물려받은 상속인이 이미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으며, 더 이상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젊은 사람들을 고용하여 경작에서 수확, 수리에 이르기까지 관리를 맡긴다. 이러한 관행을 현지어로 ‘수홀(suhol)’이라고 하는데, 이는 농사를 짓지 않고 마을이나 도시에서 일하는 자식들을 둔 노인들의 걱정거리 중 하나이다. 이들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파릴과 다타그를 누가 관리할 것인지에 관해 걱정을 하고 있다.


파릴과 관련된 가치, 신념, 의식, 관습

농민들은 자급과 생존을 위해 작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비옥한 토양을 제공하는 파릴을 중요시한다. 파릴과 다타그가 없다면, 고지대 농경은 그 지형 및 지질학적 특징으로 인해 훨씬 어렵고 생산성이 낮을 것이다. 모든 정보제공자들이 “조상들이 만든 파릴과 다타그가 없었다면, 토양 침식이 일어나기 쉬운 산비탈에 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을 것”이라며, “선조들의 독창성에 감사한다”고 입을 모은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시간이 지나도 파릴과 다타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선조들이 그들에게 물려준 유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 중 많은 수는 고지대를 떠나 다른 생계 수단을 선택할 수 있으므로, 파릴, 다타그 그리고 농업 전반에 별로 가치를 두지 않는 듯하다.

필리핀에서는 토지 상속과 관련된 다양한 관습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는 모든 자녀가 토지를 균등하게 상속받는다. 그러나 타 지역과는 달리, 아르가오의 바랑가이 타바야그 주민들은 일반적으로 막내 아들에게 파릴과 다타그를 상속한다. 다른 땅은 다른 자녀들에게 분배된다. 아로보가(家) 역시 이러한 관습을 따랐다. 막내인 심플리시오는 (역시 막내 아들이었던) 아버지로부터 파릴과 다타그를 물려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 호아킨 아로보로부터 그 땅을 물려받은 것이었다. 심플리시오의 형인 마르셀로는 아버지로부터 파릴이나 다타그를 상속받지 못했지만, 파릴이 없는 땅을 물려받았다. 파릴을 관리 및 유지하는 것은 파릴을 상속받은 사람의 책임이다. 한 정보제공자는 “지금은 동생이 파릴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밝혔다. 파릴을 상속받은 또 다른 정보제공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에는 막내 아들이 아버지의 땅 중 상당 부분을 물려받는 것이 규칙이었지만, 농사를 계속할 것으로 생각되는 자손에게 땅을 넘겨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녀가 없는 농부는 조카들에게 파릴과 다타그를 상속할 수도 있지요.”

파릴과 함께 가치도 다음 세대로 상속된다. 유산의 가치가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유산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 유산을 조카들에게 주어 잘 돌보도록 할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자급의 중요한 원천이 되는 파릴입니다. ‘내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데 너희들이 일거리를 찾지 못한다면 어디로 가겠니? 언제라도 집으로 돌아오면 된다... 그래서 남들처럼 땅을 팔면 안되는 것이란다.’ 이것이 바로 나의 세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조언입니다.”

또한 파릴을 둘러싼 의식과 관습 역시 존재한다. 이러한 의식은 옥수수 수확기에 자연의 영령을 달래는 의식을 연행하는 것 등 기본적으로 초자연적인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 디와타(diwata), 그리고 동사로 사용되면 디와타와 같은 의미를 갖는 두로트(dulot) 등 이와 관련된 다양한 현지어 표현이 있다. 이러한 의식은 짧게 끝나며, 특히 만두두로트(mandudulot, 의식 연행자)가 이미 배가 고픈 상태라면 더욱 빨리 끝난다. 의식은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을 제외하고 하루 중 언제든지 수행할 수 있다. 옥수수 밭(바울, baul)에서 닭 2~4마리를 잡고, 빈 헤어 왁스 용기(파마다한, pamadahan)에 어린 옥수수(마이스 이나나그, mais inanag)와 함께 코코넛 와인(투바, tuba) 7잔(타가이, tagay)을 붓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옥수수 밭의 수호신’에게 바친다. [사진 3]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높은 언덕인 란토이 산(Mt. Lantoy)에 사는 영령을 불러낸다.[사진 4] “우리는 ‘망가우(Mangaw)’라는 이름을 외칩니다. 망가우는 란토이 산의 우두머리 또는 왕입니다.” 망가우는 황금으로 만든 배를 갖고 있다고 한다. 만두두로트는 타비-타비(tabi-tabi) 또는 미사-미사(misa-misa)와 리봇-리봇(libot-libot)을 연행하며, 이는 사제가 하는 행위와 유사하다. 타비 타비는 영령을 불러낼 때 하는 의식으로, 남자들이 수확 의식을 진행하도록 허가를 요청하는 것이다. 미사-미사는 영령들에게 옥수수 밭을 수호하고 풍성한 추수를 하게 해 준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의식이다. 리봇-리봇은 옥수수 밭 주변에서 행해지는 의식이다. 이러한 의식과 관습, 그리고 이와 관련된 믿음은 매우 신성한 것으로 간주된다. 현지인들은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추수 의식을 수행하지 않으면 영령들이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병에 걸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파나드(panaad)라고하는 또 다른 의식이 있는데, 파나드는 현지어로 ‘약속’이라는 의미이다. 이 의식은 파릴이 성공적으로 축조 또는 수리될 때마다 연행된다. 이는 또한 추수감사 또는 축하(파할리파이, pahalipay) 의식의 일종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 의식을 연행하는 한 주요 정보제공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 의식은 과거로부터 수 세대에 걸쳐 전해져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영령에게 추수한 곡식을 돌려주는 의식을 정말로 수행하겠다는 하나의 약속이 된 것이죠. 우리 농장에서는 이 전통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널리 수행되는 또 다른 관습은 이틀로그-이틀로그(itlog-itlog) 또는 수바이-수바이(subay-subay)라는 것으로, 브랜디 병의 몸체 위에 달걀을 놓는 것이다. 이는 올바른 치료법을 처방하기 위해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 사용되는 관습이다. 이를 통해 자연적인 것이든 초자연적인 것이든 질병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의식은 또한 영령들과 대화하여 제물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묻는 데에도 사용된다. 제물이 준비되면 의식 연행자는 영령들에게 제물이 충분한지 묻는다. 달걀이 세워지면 영령들이 제물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은 영령들이 만족할 때까지 다른 제물을 계속 추가해야 한다.

영혼에 대한 의식을 더 이상 연행하지 않는 농부들도 있지만, 그들도 여전히 풍성한 수확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디와타 또는 농장의 수호신이라고 불리는 자연의 영령들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카톨릭 신자로서 오직 하느님만을 믿는 다고 한다. 또 다른 젊은 농부들은 학교에서 과학적 사고에 대해 배웠기 때문에 더 이상 자연의 영령을 믿지 않으며, 따라서 이러한 의식을 연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농부들이 조상들의 가르침대로 의식을 계속 수행하고 있다.


결론

농업 관습은 태초부터 문화의 모든 측면에 스며들어 있는 문화의 고유한 요소이다. 바랑가이 타바야그는 농경을 주로 하는 고지대 바랑가이로, 물리적 환경으로 인해 땅을 경작하기 어려워지자 조상들은 파릴을 축조하여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언덕과 산 사이의 골짜기와 협곡에 세워진 돌담인 파릴은 오랜 시간동안 토양과 수자원 보존에 필수적인 역할을 했으며, 식량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작물을 재배하고 경작할 수 있는 추가적인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또한 이와 관련된 믿음과 관습을 통해 토지의 사용을 보완하여, 자연, 생계, 영적 영역 사이의 균형을 유지했다.

건축 유산인 파릴 자체뿐 아니라 지식, 기술, 신념, 의식 등 파릴과 관련된 무형문화유산도 세대를 넘어 이어져왔다. 그러나 그러한 유산의 연속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에는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정규 교육과 종교의 도입이 젊은 세대의 세계관을 변화시켜, 농업 및 그와 관련된 신념과 의식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젊은 세대에게 또 다른 생계 유지 방법을 모색할 기회를 제공하지만, 또한 파릴과 고지대 농업의 지속 가능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르가오 문화역사위원회(Municipality of Argao Cultural and Historical Commission)가 본 연구를 활용하여 파릴의 보존을 위한 조치를 계획하고 실행하기를 바란다. 동시에, 조상들이 물려준 유산을 지속하는 것의 중요성을 젊은 세대에게 교육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유형 및 무형유산의 지속적인 연행과 유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러한 유산의 진정성과 현재 세대에 대한 유용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기술적 진보에 따라 변화된 현재의 환경에서도 파릴은 아르가오 고지대 계단식 농업의 지속가능성에 여전히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유산 보존 운동가들이 지방 정부기관의 농업 지원 서비스를 통해 이러한 관습을 기록하고 활성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정치, 경제 및 문화적 유산의 협력을 이끌어 내어, 아르가오의 농업유산을 미래에도 잘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