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 : Sook-Jeong Jo
Year : 2018
조석은 어민들의 시간 관념과 생활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서해는 대조차가 3~9m에 이르기 때문에, 이 지역 어민들은 조수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 이 글은 서해 곰소만 어촌의 민족지적 연구를 토대로 ‘물때’의 개념으로 범주화되는 조석과 시간에 관한 한국 어민들의 전통지식을 살펴본다. 세 부분으로 나누어 논지를 전개한다. 첫째, 물때가 무엇이고 조수의 변화가 어떤 시간 단위로 구분되는지를 기술한다. 둘째, 15일 주기 물때의 토착 명칭체계를 분석함으로써 물때의 원리와 민속구분법을 설명한다. 셋째, 바다와 육지 모두에서 물때에 의존적인 어민들의 독특한 삶을 ‘물때생활’로 규정하고, 물때 지식이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기술한다. 물때에 대한 어민들의 인지체계는 ‘사리’와 ‘조금’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특히 ‘사리’가 더 강조된다. 어민들의 물때에 대한 전통지식은 자연현상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인지되고 지역문화의 일부분이 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무형문화유산의 좋은 예를 제공한다.
조수의 변화는 어민들의 생업 터전인 바다의 경관과 상태를 매일 다르게 만든다. 바다 공간만의 독특한 시간 리듬을 만들어 바다에 대한 인간의 접근을 제약하기도 한다. 이러한 해양 환경에 적응한 어민들은 육지 사람들과는 상당히 다른 그들만의 독특한 시간에 대한 이해를 발달시켜 왔다. 조석과 시간을 개념화하는 민속명칭인 '물때'는 한국 어민들의 해양환경에 대한 전통지식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세 바다는 각각 동해와 남해, 서해로 불리는데(지도 1), 세 해역의 해황은 상당히 다르다. 예컨대, 동해의 대조차는 30cm에 불과하지만, 서해에서는 3~9m에 이른다(홍재상: 1998, p. 18; 고철환: 2009, pp.69-71). 그래서 특히 서해에 위치한 어촌을 연구할 때는 이 지역 어민들이 조수의 변화를 어떻게 지각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필자는 한국 어민의 문화와 해양환경의 관계에 대한 민족지적 연구를 수행해 왔다(조숙정: 2012, 2014, 2015). 이 글은 조석에 대한 한국 어민들의 인지체계에 관한 것이다. 조석과 관련된 정교한 어휘 체계의 발달은 그들의 문화적 강조를 반영한다. 이 연구는 언어적 분석을 기반으로 하는 민족과학 또는 인지인류학의 이론적 관점을 적용하여 사람들이 그들의 경험 세계를 어떻게 개념화하는지를 발견하려는 것이다.
이 글은 서해 곰소만 어촌의 민족지적 연구를 토대로 '물때'라는 개념으로 범주화되는 조석과 시간에 대한 한국 어민들의 전통지식을 고찰하고자 한다. 물때체계는 상당히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을 가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한 달에 두 번 관찰되는 조석 범주에 초점을 맞추어 물때를 논하려고 한다.
연구지를 간단히 소개한 후에 물때를 세 가지 측면에서 검토할 것이다. 첫째, 한국 어민들이 물때를 어떻게 개념화하는지, 그리고 조수의 변화를 어떻게 여러 시간 단위로 범주화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둘째, 15일 주기 물때의 토착 명칭체계를 분석해서 물때의 원리와 민속구분법을 밝혀낼 것이다. 셋째, 바다와 육지에서 모두 물때의 영향을 받는 어민들의 독특한 삶을 '물때생활'로 규정하고, 어민들이 일상생활에서 물때를 사용하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보여줄 것이다.
이 글의 분석 자료는 필자가 전라북도 부안군의 곰소만에 있는 왕포 어촌 마을에서 장기간의 현지조사를 통해 수집한 자료에 토대한다. 필자는 2007년 4월에 이 마을을 처음 방문했고, 2008년 7월부터 2011년 7월까지 약 3년 동안 현지조사를 하였다. 그리고 2013년 2월까지 보충조사를 실시했다. 제보자들의 연령대는 40대부터 80대까지였는데, 주요 제보자는 1930~40년대에 태어나 1950~60년대에 어부가 된 사람들이다. 그 당시에는 조석예보가 어부들에게 일반적이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경험 많은 유능한 어부가 되는 과정에서 지역의 해양환경에 대한 구전된 전통지식과 경험적 지식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컸다.
곰소만은 부안군과 고창군 사이에 있다 [그림 1과 2]. 만의 폭은 남북으로 7~9km이고 길이는 동서로 약 20km로 서쪽으로 바다가 열려 있는 지형이다. 수심은 약 20cm로 깊지 않고 평균 4m 이상의 대조차가 발생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사진1, 2, 3], 만내에 약 75㎢의 넓은 갯벌이 발달해 있다(고철환: 2009, pp.68-69; 장진호: 2009, pp.367-368).
부안군의 곰소만 북안 지역은 변산반도의 험준한 산줄기들이 남쪽 해안 가까이까지 접근해 있어 해안평야가 발달하지 못했다(김일기: 1988, p.33). 그래서 주로 밭농사를 지으며 소규모 어업을 생업으로 삼아온 바닷가 마을들이 만의 긴 해안선을 따라서 발달했다. 과거에 지역 어민들은 서해의 대표 어종인 조기를 주로 잡았다. 곰소만 앞에 있는 위도는 조기파시로 유명한 곳이었다. 조기잡이는 어족자원을 고갈시킨 남획과 기후 변화 때문에 1960년대 이후 쇠퇴하였다.
왕포는 곰소만 내에 있는 작은 어촌 마을이다. 마을 이름은 고기가 많이 잡히는 바닷가 마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300여 년 전 김해 김씨 집안의 7대조가 터를 닦고 마을을 형성했다고 전해진다(1937년생 김ㅇ만 구술; 양만정: 1985, p. 291). 여전히 마을의 중요 성씨는 김해 김씨고,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친인척 관계다. 2009년 기준 왕포는 38가구에 91명(남자 44명, 여자 4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1980~90년대 김양식 호황기 때는 100세대 가까이도 살았다고 한다.
1970년대 중반까지 왕포 어민들은 1톤급 풍선과 주낙을 이용해 조기, 갈치, 주꾸미 등을 잡았다. 현재는 1~2톤 내외의 선외기 어선 및 나일론 자망과 소라껍데기 통발을 이용해 주꾸미와 꽃게를 주로 잡고 있다. 또한 젓새우와 피뿔고둥도 잡는다. 겨울에는 소수의 어민들이 실뱀장어나 숭어, 굴을 잡기도 하지만 겨울철은 휴어기로 여겨진다(조숙정: 2017, p.112).
왕포 어민들은 보통 새벽 5시 전후 썰물에 바다로 나간다. 잡는 어종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어민들은 바다에 미리 주꾸미통발이나 꽃게그물을 여러 줄로 나누어 설치해 놓고, 매일 교대로 일부를 걷어 올려 고기를 잡는다. 밀물이 되면 대개 오전 11시 전후 또는 늦어도 오후 1시 전에는 포구로 돌아온다. 그리고 선착장이나 집에서 중간도매상에게 당일 어획물을 활어 상태로 팔고, 오후에는 어구를 손질하거나 집안일을 한다(조숙정: 2017, p.112).
왕포 어민들의 조업 공간은 곰소만 내에서 외해 쪽으로 조금씩 확장되는 변화가 있었다. 1970년대 중반에 이 지역의 연안 어족자원은 감소했고, 기계배가 마을에 도입되었다. 이후 왕포 어민들은 곰소만과 위도 사이 바다로 주 어업 공간을 이동했다. (그림 2에서 점선으로 표시된 타원 내부 구역 참조) 이 어로 구역은 어민들이 소형 어선을 타고 당일치기 조업을 할 수 있는 마을에서 가까운 바다다.
'물때'는 '물(tide)'과 '때(time)'로 구성된 합성어다. 물은 문자 그대로 '물'을 의미하지만, 이 맥락에서는 '조석'을 뜻한다. 민속 명칭인 물때(tide time)는 모든 바닷물의 변화를 포함하는 개념 범주이지만, 한국 어민들은 또한 이 명칭을 다양한 시간 단위와 일치하는 각각의 조석을 지시하는 데도 사용한다.
물때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곰소만 어민들이 이 명칭을 일상 대화에서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사람들이 함께 그물을 손질하거나 조개를 채취하면서 어떤 사람이 "지금 물때가 어떻게 되는가?"라고 물었다고 하자. 그러면 누군가는 물의 상태에 따라서 "지금 물 들온다." 또는 "지금 썰물이다."라고 답할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 쉬며 담소를 나누는 동안에 어떤 사람이 "오늘 물때가 어떻게 되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는 "오늘 한마다." 또는 "오늘 조금이다."와 같은 답을 기대하는 것이다. 어민들은 바다에서 조업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를 말할 때, "한 물때 쓴다." 또는 "두 물때 쓴다."라고도 말한다. 여기서 '한 물때'는 하나의 썰물 또는 하나의 밀물을 의미하는 것으로 6시간을 뜻하고, '두 물때'는 12시간을 뜻한다. 반면, 15일 주기 물때에서 '한 물때'는 하루를 나타내고, '두 물때'는 이틀을 나타낸다.
위의 예들은 민속 명칭인 물때가 물의 상태를 알려 주면서 동시에 그 물과 연관된 시간이나 날짜를 가리킨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어민들에게 물때는 실제로 더 포괄적인 개념이고 15일 주기 물때와 관련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드러낸다. 간단히 말해, 물 곧 조석의 구분이 시간의 구분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민들에게 물때란 바닷물의 주기적인 변화에 토대하여 구분된 다양한 물의 상태와 그와 관련된 시간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임을 이해해야 한다.
조석이란 지구에 작용하는 달과 해의 인력으로 인해 바닷물의 규칙적인 승강운동이 초래한 자연현상이다. 왕포 어민들은 바닷물의 이 규칙적인 움직임을 가리켜 "물이 하루에 두 번 들고 쓴다[썬다]."는 말로 설명한다. 이 관용적 표현은 어민들이 바닷물의 변화를 하루라는 관점에서 6시간 주기로 일차적으로 지각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바닷물의 구분은 이 6시간 주기의 물에 기초하여 확장된다. 바닷물의 변화는 크게 하루와 한 달, 일 년이라는 세 개의 상위 시간 단위로 구분되고, 각 범주는 더 작은 시간 단위로 세분된다 [표 1]. 이 글에서는 한 달에 두 번 관찰되는 15일 주기 범주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사실 하루의 관점에서 조수의 변화라는 것은 24시간 50분이 걸리는 현상이다. 그래서 조수의 변화는 매일 똑같지 않고 다소간 유동적이다. 어민들도 조수 변화의 유동성을 잘 알고 있기에 매일매일 물의 변화가 "약 1시간씩 늦어진다."라고 설명하며, 여기에 맞추어 바다로 나가는 시간을 조정한다.
조수의 상태는 매일 똑같지는 않지만, 15일을 주기로 일정한 상태가 반복되는 것으로 인지된다. 이 범주의 물이 15일 주기 물때로 알려져 있고, 한국 어민들의 전체 물때 인지체계에서 핵심을 구성한다. 어민들의 일상 대화에서 '물때'라는 표현은 이 15일 주기의 조석과 시간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15일 주기 물때에서는 15일의 각 날에 조수의 상태를 가리키는 각각 다른 물의 이름이 사용된다. [표 2]를 보면, '한마'(또는 '한물')부터 '무심'까지 15개 물때 명칭이 한 조를 이룬다. 이것이 한 달에 두 번 반복되는 것이다. 물때 주기는 음력을 기준으로 한다. 예컨대, 음력 1일과 16일의 물때는 항상 '일곱마'가 되고, 10일과 25일의 물때는 '한마'가 되는 식이다. 특정 물때가 특정 날짜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민들은 물때 명칭과 음력 날짜를 한 쌍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의 조석은 '한 물때'로 계산된다. 예컨대, '한마'(음력 10일)와 '두마'(음력 11일)를 합쳐 '두 물때'라고 말하며, 이는 이틀을 의미한다.
[표 2]는 왕포 마을에서 조사된 세 유형의 물때 명칭체계를 보여준다. 우선 세 유형에서 차이는 물때 이름의 숫자에 결합되는 형태소에서 볼 수 있다. 유형Ⅰ에는 ‘마’가 사용되고, 유형Ⅱ와 유형Ⅲ에는 ‘물’이 사용된다. ‘마’는 ‘물’을 의미하는 방언이지만, 정확한 어원은 알려져 있지 않다. 오늘날 왕포 어민들은 두 형태소를 모두 사용한다. 구조상으로 세 유형의 물때 명칭은 수사형 명칭과 명사형 명칭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며, 각 유형에서 각 부분의 수는 상이하다.
곰소만 어민들은 전통적으로 유형Ⅰ의 물때 명칭을 사용해 왔다. 유형Ⅱ와 유형Ⅲ은 조석표 달력의 사용과 함께 순차적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사진 6]. 한국 어민들에게 '조석표'라는 이름으로 조석예보가 보편화된 시점은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반이다(이기복: 2002, p.20). 어민들은 면담 과정에서 윗세대부터 사용해 온 지역의 물때 명칭을 유형Ⅰ로 설명했다. 그러나 일상 대화에서는 유형Ⅲ을 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즉, 유형Ⅰ이 곰소만 지역의 이상적인 명칭체계 유형이라면, 오늘날 실제로 주로 사용되는 것은 유형Ⅲ인 것이다.
음력에는 30일까지 있는 달도 있고 29일까지 있는 달도 있는데, 전자를 '큰달'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작은달'이라고 부른다. 큰달에는 그믐날인 30일은 항상 '여섯마'가 된다. 하지만 작은달의 29일에는 '다섯마'와 '여섯마'를 합쳐서 '두 물때'를 '한 물때'로 계산해 버린다. 작은달에는 하루가 부족하고 돌아오는 음력 초하루의 물때는 무조건 '일곱마'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 유형의 물때 명칭체계는 두 부류의 어형 구조로 이루어진 공통점이 있다[표 3]. 하나는 수사에 '마' 또는 '물'의 형태소가 결합된 '수사형 명칭'이고, 다른 하나는 별개의 이름을 갖는 '명사형 명칭'이다. 유형Ⅰ에는 10개의 수사형 명칭과 5개의 명사형 명칭이 있다(10+5 명칭형). 유형Ⅱ에는 11개의 수사형 명칭과 4개의 명사형 명칭이 있고(11+4 명칭형), 유형Ⅲ에는 13개의 수사형 명칭과 2개의 명사형 명칭이 있다(13+2 명칭형). 유형Ⅰ에서 유형Ⅲ으로의 변화는 수사형 명칭의 사용은 확대되는 반면, 명사형 명칭의 사용은 축소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물때는 물의 양과 세기로 지각되는 조수의 상태를 나타낸다. 15개의 물때 명칭은 물이 15일 동안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언어적 표지다. 물때 명칭체계의 원리상, 수사형 명칭은 숫자가 커짐에 따라 수위와 수세가 점차 증가해가는 것이고, 명사형 명칭은 감소하는 것을 나타낸다. 곰소만 어민들은 조수의 양과 세기가 많아지고 세지는 것을 '물이 산다' 또는 '물이 살아난다'라고 하고, 물이 적어지고 약해지는 것을 '물이 죽는다'라고 표현한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수사형 명칭은 '물이 사는 때'와, 명칭은 '물이 죽는 때'와 관련된 물떄로 이해할 수 있다.
유형Ⅰ을 기준으로 조수의 변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자. '한마'는 이론상 수위와 수세의 변화가 멈추었던 물의 양과 흐름이 커지는 쪽으로 변화를 시작하는 첫 단계의 물때다. 하지만 '두마'까지는 그 변화가 눈에 띄게 크지 않다. '서마'가 되면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갈 수 있을 만큼 좋은 물의 상태가 된다. 그래서 어민들이 중요하게 지각하는 물때 중 하나다. 그 이후 '너마', '다섯마'를 거치며 수위와 수세는 점점 더 커져서 '여섯마'가 되면 물이 매우 많이 들오고 물발이 매우 세진다. '여섯마'를 '사리'라고도 하는데, 수위와 수세가 가장 큰 물때를 의미한다. 이때부터 '아홉마'까지 수위와 수세는 최고조를 향해 커져간다. 그리고 '열마'가 되면 물은 더 이상 '살아나지' 않는다. 그래서 '열마' 이후에는 물때 명칭도 명사형 명칭으로 바뀐다. 이는 수위와 수세가 약해지는 흐름으로 바뀌었음을 나타낸다. '한게끼'에 들어서면 수위와 수세가 꺾이기 시작하고, '대게끼'에는 수위와 수세가 크게 떨어진다.
'게끼' 다음은 '조곰'[조금]인데, 물때 중에서 수위와 수세가 가장 약할 때다. '조곰'은 두 단계로 구성된다. 첫번째 조금인 '아침조곰'은 물발이 약해서 고기잡이를 나가기에 적합하지 않은 물의 상태로 들어선 물때이고, 두번째 조금인 '한조곰'은 수위와 수세가 최대치로 떨어진 물때다.
'한조곰'을 또한 그냥 '조금'이라고도 한다. 과거에 어민들은 대개 '아침조곰'부터는 고기잡이를 중단하곤 했다. '한조곰' 다음 날은 '무심'으로, 15일 주기 물때의 마지막 날이다. '무심' 단계에서는 물이 더 이상 '죽지 않고' 수위와 수세의 변화가 멈춘 상태다. '한마'가 돌아오면 물은 다시 '살아날' 징후를 보이기 시작한다. 15개의 물때 명칭 중에 '여섯마'와 '한조곰'만은 각각 별도의 하위 명칭이 세분되어 사용된다. 그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보름 여섯마 또는 보름 사리: 음력 15일 여섯물 또는 사리
②그믐 여섯마 또는 그믐 사리: 음력 30일 여섯물 또는 사리
①초야드레 조곰 또는 초야드레 조금: 음력 8일 조금
②수무살 조곰 또는 스무사흘 조금: 음력 23일 조금
두 물때의 하위 명칭들은 각 물때가 되는 음력 날짜가 결합된 형태다. 즉, 이 명칭들은 한 달에 두 번 든 '여섯마'와 '한조곰'이 날짜상으로 어떤 주기의 물때에 해당하는지를 정확히 알려준다.
나머지 물때 명칭에는 물때와 음력 날짜의 관계를 보여주는 표지가 없다. 따라서 한 달의 관점에서 '여섯마'와 '한조곰'은 15일 주기 물때의 준거점이 되는 것이다. 달리 말해, '여섯마'와 '한조곰'의 하위 명칭의 분화는 이 물때들이 물때체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반영한다. 이 중요성은 물때의 몬속분류법에서도 분명하게 관찰된다. 또한 '여섯마'(사리)와 '한조곰'(조금)의 하위 명칭들은 15일 주기 물때가 모양이 변하는 달과 밀접히 관련됨을 보여준다. 달의 변화에 대응해 보면, '여섯마'는 보름달과 그믐달이 뜨는 때에 일어나고, '한조곰'은 상현달과 하현달이 뜨는 때에 일어난다. 그러나 곰소만 어민들이 사용하는 물때 명칭체계는 시간이 흐르면서 유형Ⅰ에서 유형Ⅲ으로 바뀌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단어의 변화 이상을 의미하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왕포 어민들은 부안수협과 남부안농협이 배포하는 달력을 모두 사용한다. 두 달력에는 양력과 음력 날짜 및 조석표, 물때 명칭이 기재되어 있다(사진 6). 세 유형의 물때 명칭 체계와 두 달력의 물때 명칭을 비교해 보면, 수협 달력의 물때 명칭은 유형Ⅱ와 같고, 농협 달력은 유형Ⅲ과 같은 체계임을 알 수 있다. 어민들은 수협 달력보다 농협 달력을 더 선호한다. 수협 달력은 부안의 북쪽에 있는 군산 외항 기준의 조석표를 제공하고, 농협 달력은 곰소만 앞에 있는 위도항 기준의 조석표를 제공한다. 어민들이 군산 기준 조석표를 사용하려면 자기 지역의 물때가 달력 조석표보다 1시간 더 빠르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아마도 지역 어민들의 이러한 불만을 고려한 것인지 2011년부터 부안수협도 위도항 기준 조석표 달력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국립해양조사원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조석표는 1953년에 처음 제공되기 시작했고, 군산항과 위도항에서는 각각 1980년과 1984년부터 조위관측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요즘에는 조석표를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민들은 바닷물의 상태를 직접 관찰한다. 그러나 지금과 달리 조석표가 없었던 과거에 어민들은 그들의 전통지식에 전적으로 의존했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어민들의 물때 인지체계가 그들이 노출되어 있는 외부 지식에 의해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유형Ⅰ에서 유형Ⅲ으로의 물때 명칭의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가장 큰 차이는 물때 명칭의 의미 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물때 명칭체계의 변화는 수사형 명칭의 확대와 명사형 명칭의 축소로 요약될 수 있다(표 2). '게끼' 물때의 2개 명칭은 모두 사라졌고, '조곰' 물때의 2개 중 1개 명칭도 사라졌다. '한조곰'은 그냥 '조금'으로 남았는데, '조금'의 이상적 범주이면서, 또한 15일 주기 물때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물때인 '여섯마' 곧 '사리'와 대조를 이루는 범주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때 명칭체계에서 수사형 명칭과 명사형 명칭의 결합 구조가 15일 동안 물의 변화 양상을 의미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수사형 명칭은 수위와 수세가 커지는 물때와 관련되고, 명사형 명칭은 약해지는 물때와 관련된다. 유형Ⅰ은 수위와 수세가 '한마'부터 '열마'까지 증가하고, '한게끼'부터 '무심'까지는 감소하는 물때체계의 원리를 보여준다. 그러나 유형Ⅲ은 수위와 수세가 '열서물'까지 증가하고, 단 2개의 물때에서만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물의 양과 세기가 '열서물' 곧 '아침조곰'까지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형Ⅲ은 '한물'부터 '열서물'까지 숫자로 셈으로써 물때 명칭을 단순화시킨 것이다. 이 단순화는 지역 바다의 조수 변화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간단히 말해, 명사형 명칭의 확대로 어민이 아닌 사람도 물때를 셈하기는 쉬어졌지만, 전통적인 물때 명칭체계가 가지고 있는 물의 변화를 보여주는 기본 원리와 의미가 새 명칭체계 안에서는 퇴색된 것이다.
곰소만 어민들은 그저 15개의 물 이름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다. [표 4]에서 보듯이, 어민들은 15개의 물때를 4단계의 위게적 의미 구조로 이루어진 민속분류법으로 인지한다. 이 문화모형은 조수의 변화에 대한 어민들의 지식이 얼마나 체계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표 4]에서 단계Ⅳ는 의미 구조에서 일차적 범주로서 15개의 일별 물때를 포함한다. 그 상위 단계들은 15개 일별 물때들 중에서 물의 상태가 유사한 날들을 며칠씩 묶어 소수의 상위범주들로 구분한것이다. 단계Ⅲ은 단계Ⅳ에서보다 더 포함적인 4개의 범주로 구성되고, 4개 범주들은 다시 단계Ⅱ의 2개 범주들에 포함된다. 상위명칭들은 각 범주를 특징짓는 물 상태의 유사성을 보여준다.
단계Ⅲ에서 규정된 물의 상태는 물이 들어오는 양(수위)의 변화와 밀접히 관련된다. '산짐'과 '게끼'는 수위가 올라가기 시작하는 때와 떨어지기 시작하는 때에 대한 구분이고, '사릿발'(또는 '사리')과 '조곰'(또는 '조금')은 수위가 계속 높아지는 때와 계속 낮아지는 때에 대한 구분이다. 물때의 일차 범주를 고려해 보면, '산짐'은 보통 '서마'부터 지각되고 '서마'부터 '다섯마'까지 3개의 물때를 포함한다. '사릿발'은 '여섯마'부터 '아홉마'까지 4개의 물때를 포함한다. '게끼'는 '열마'부터 '대게끼'까지 3개의 물때를 포함하고, '조곰'은 '아침조곰'부터 '두마'까지 5개의 물때를 포함한다.
물때 명칭체계의 원리에 의하면, '한마'는 '산짐'의 시작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어민들은 '서마'부터 '산짐'으로 인식한다. 왜냐하면 충분히 지각 가능한 물의 변화가 실질적으로는 '서마'부터 이고, 이때부터 바다에서 고기잡이가 가능한 물 상태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여섯마'를 '사리'라고도 하지만, 어민들에 의하면, '여섯마'보다는 오히려 '일곱마'부터 '아홉마'까지가 실질적으로 물도 더 많이 들어오고 물발도 더 세다고 한다. 전통어업인 주낙은 물살이 너무 세도 안 좋기 때문에, '서마'부터 '여섯마'까지 주낙질 하기에 제일 좋다고 한다.
단계Ⅱ의 범주 명칭들은 '사릿발'(또는 '사리')과 '조곰'(또는 '조금')이다. 이 명칭들은 단계Ⅲ의 것과 똑같지만, 의미는 단계Ⅱ에서 더 포괄적이다. '사릿발'은 수위가 올라가고 물발이 센 때의 물때를 모두 포핳ㅁ한다. 반면에, '조곰'은 수위가 떨어지고 물발이 약한 물때를 모두 포함하는 범주다. 두 물때 범주는 어민들이 '물이 산다'와 '물이 죽는다'라고 관용적으로 표현하는 물의 상태와 똑같은 것이다. 바꿔 말해, 어민들이 '물이 산다'고 말하는 물의 상태는 죽었던 물이 살아올라오기 시작하는 상태(즉, 산짐)와 물이 최고조를 향해 계속 살아 올라가는 상태(즉, 사리)을 포괄하는 의미고, '물이 죽는다'고 말하는 물의 상태는 살아 올라오던 물이 죽기 시작하는 상태(즉, 게끼)와 물이 최저조를 향해 계속 죽어가는 상태(즉, 조금)를 포괄하는 의미인 것이다.
어민들은 보통 조금에는 바다에 나가지 않는데, 물발이 약할 때는 고기가 잘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게끼'는 단계Ⅱ에서 '조곰'에 포함되지만, 단계Ⅲ의 '조곰'과 달리 '사릿발'의 영향으로 아직 물발이 센 편이다. 그래서 어민들은 대개 '게끼'까지 조업을 할 수 있다. 즉,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물때는 '산짐'과 '사릿발'(단계Ⅱ의 '사릿발'의 모든 물때)과 함께 '게끼'(단계Ⅱ의 '조곰'의 일부 물때)로 구성된다.
단계Ⅰ은 15일 주기 물때의 의미 구조에서 최상위범주다. 단계Ⅰ의 명칭 '사리'는 '여섯마'를 지시하는 '사리'의 기본 개념이 확장되어 파생적으로 사용된 가장 광의의 개념이다. 물때 명칭으로 본 15일은 '한 사리'가 되므로, 한 달에 '두 사리'가 있는 것이다. 곰소만 어민들은 한 어종을 잡는 어기(漁期)로 대개 '네 사리'나 '다섯 사리'(즉, 두 달 또는 두 달 반)를 쓴다.
물때의 명칭과 범주들은 어민들의 물때 인지체계에서 '사리'와 '조금'의 중요성을 반영한다. 그러나 물때의 민속분류법에서 원형범주는 '사리'다.
'사리'에 집중된 어민들의 관심은 물때와 어로활동의 관계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물때의 사용은 곰소만 어민들이 풍선과 주낙을 사용하던 과거에 더 중요했다. 어민들은 보통 사리 때 바다로 나갔는데, 어획량이 물발의 세기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또한 어민들이 사리 때를 선호한 것은 풍선으로 항해할 때 바람과 조류를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민들은 대개 새벽 썰물에 바다로 나가고 밀물을 이용해 육지로 돌아왔다. 어민들의 설명에 의하면, 그들이 조업을 나가는 아침에 조류가 사리 때는 썰물인데 조금 때는 밀물이라고 한다. 따라서 사리 때가 어로활동을 하기에 특히 좋은 물때였던 것이다.
현재 곰소만 어민들은 여전히 아침에 바다에 나가 조업한다. 기계배를 타기 때문에 밀물과 썰물에 상관없이 바다에 나갈 수도 있고 육지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리고 바다에 미리 그물과 통발을 설치해 두기 때문에, 날씨만 허락한다면, 사리 때와 조금 때를 구분할 것 없이 거의 매일 고기를 잡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어획량은 여전히 조금 때보다는 사리 때가 더 좋고, 어민들이 잡는 어종과 사용하는 어구에 따라서는 사리와 조금을 구분해서 조업을 해야 한다.
물때는 여전히 바다에서 어민들의 조업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곰소만 어민들은 어로활동이 "물때 따라 하는 물때일"이라고 강조한다. 물때는 육지의 일상생활에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필자는 바다와 육지에서 모두 물때의 영향을 받는 어민들의 독특한 생활방식을 '물때생활'이라고 규정하고자 한다. 이 개념은 '물때일'이라는 어민들의 관용적 표현을 확장한 것이다. 여기서는 전형적인 물때생활의 사례들을 일부 소개함으로써 어민들이 바다와 육지에서 물때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여주려고 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어민들은 보통 사리 때 어로활동을 한다. 그러나 잡는 어종에 따라서는 조금 때 조업할 수도 있다. 예컨대, 작은 젖새우나 피뿔고둥은 조금 때 갯가에서 주로 잡는다. 얕은 물이나 해저 가까이 붙어 서식하는 어종을 잡을 때는 조금 때가 더 선호된다.
길이가 2~3cm 정도인 젓새우는 한국 사람들이 김치 양념에 사용하는 새우젓의 주 원료다. 어민들은 보통 이 작은 새우를 여름에 잡는다. 주로 여성 어민들이 7월부터 8월까지 갯가에서 특히 조금 동안에 젓족대를 이용해 새우를 잡는다[사진 7과8].
어민들은 또한 8월부터 9월까지 만내에 주목망을 설치해 젓새우를 잡는다. 그물 입구는 사리 동안 서쪽으로 열린 상태로 설치해 둔다[사진 9]. 어기 동안 수온이 아직은 높기 때문에 조금 때 물속에 있는 그물에는 물때가 쉽게 낀다. 이 때꼽을 제거하지 않으면 사리 때의 빠른 물살에 그물이 터져 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조금 때는 그물을 빼내와 뭍에 널어 햇볕에 말린다. 조금이 지나면 때꼽을 털어낸 그물을 다시 바다에 설치한다. 대략 '다섯물'부터 '열서물'까지는 바다에서 조업을 하고, '조금'부터 '너물'까지는 육지에서 그물을 말리고 손질한다.
어민들은 아침 조류의 방향에 따라서 꽃게그물이나 주꾸미주낙을 당기는 방향을 바꾼다[사진 10]. 곰소만에서는 썰물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밀물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어민들은 조류를 역수하며 양승기를 이용해 그물이나 주낙을 끌어올린다. 아침 물이 썰물이면 (즉, 사리 때는) 어민들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올라가며 어구를 당긴다. 아침 물이 밀물이면 (즉, 조금 때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내려가며 어구를 당긴다. 그러나 조금 때는 물발이 약하기 때문에 밀물과 썰물을 구분하지 않고 조업할 수도 있다. 기계배와 양승기가 도입되기 전에는 조류 방향을 따라서 고기를 잡았다. 한 어민에 따르면, 만약에 전통 어구로 조류를 역행해 조업을 하면 풍선이 전복될 수 있다고 한다. 현재도 어민들은 조류를 고려하여 고기잡이를 하고 있다.
왕포 어민들은 종종, 특히 신선한 제철 해산물을 많이 사야할 때, 곰소나 곤소재지인 부안읍 또는 격포의 어시장에서 해산물을 구입한다[그림 2]. 이럴 때 어촌 사람들은 물때를 고려해 어시장을 방문할 시기를 정한다. 2011년 5월 어느 날, 왕포 마을 여성이 친정어머니 그리고 마을 아주머니와 함께 격포에 있는 어시장으로 간장게장을 담글 꽃게를 사러 갔다. 많은 제철 해산물을 도매로 팔고 있는 어시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녀는 꽃게를 많이 샀고, 친정어머니는 갑오징어를 많이 샀다. 그날은 5월 16일이었다. 음력으로 4월 14일이었고, 물때는 '사리' 중 하나인 '다섯마'인 날이었다. 그들은 조금 때보다는 상대적으로 어획량이 더 좋고 해산물 종류가 더 다양한 사리 때에 어시장에 가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다.
어민들은 또한 육지에서 행사를 치러야 할 때도 물때를 고려한다. 비록 지금은 사리와 조금에 상관없이 조업을 하지만, 사리 때가 여전히 조금 때보다는 어획량이 더 좋기 때문에, 어민들은 사리 때를 피해서 행사 날짜를 잡는 경향이 있다.
2009년 1월 어느 날, 마을 부녀회가 봄에 가는 마을 단체관광 날짜를 의논하기 위해서 마을회관에 모였다. 주꾸미잡이가 2월 하순 무렵에 시작되기 때문에, 회원들은 2월 말이나 3월 초로 날짜를 잡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한두 사람이 조업을 쉬어야 하는 것 때문에 내켜하지 않자 부녀회장은 "조금 때라도 하루 날 잡어 가지고 가자."고 다독였다. 그러자 누군가가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을 떼어 회원들에게 가져왔다. 그들은 요일이나 날짜가 아니라 물때에 집중했다. 가능한 날이 3월 5일이나 6일(음력 2월 9일 또는 10일)로 좁혀졌다. 두 날의 물때는 각각 '조금' 때에 해당하는 '무심'과 '한마'였다. 결국 관광 날짜는 3월 6일 금요일로 정해졌다. 왕포 어민들이 속해 있는 어촌계는 2010년에 단체관광을 계획했다. 날짜는 주꾸미를 잡는 많은 회원들을 고려하여 4월 19일 월요일로 정해졌다. 음력으로는 3월 6일로 물때는 '조금' 때에 해당하는 '열두물'이었다. 주꾸미잡이와 달리 소라잡이는 조금 때에 한다. 잡는 어종에 따라 물때 이용이 다르기 때문에, 일부 어민은 단체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마을 행사뿐만 아니라 도 단위 또는 전국 단위의 행사도 물때에 따라 날짜가 정해진다. 2008년 11월 15(수)에 '제3회 전라북도 수산업경영인대회'(어민들은 짧게 '어민대회'라고 부름)가 부안군에서 개최되었다. 음력으로 10월 8일로 물때가 '조곰'이었다. 2011년에는 2년마다 열리는 '전국 수산업경영인대회'가 5월 11(수)부터 13일(금)까지 군산시에서 개최되었다. 음력으로 4월 9일부터 11일까지로 물때가 '무심'부터 '두마'까지였다. 두 대회 모두 '조금' 동안에 열린 것이다. 어민들은 어민대회보다 참여도가 상대적으로 더 높은 농민대회와 비교하면서 "어민들은 일이 물때 따라 움직이다 보니까 참여가 별로 안 좋다."고 설명했다. 이 말은 어촌 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 물때의 중요성을 확인시켜 준다.
끝으로, 음식과 관련된 신앙 행위들이 있다. 장은 한국 음식에 널리 사용되는 기본 양념이다. 요즘은 사람들이 흔히 발효음식을 사서 먹지만,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장은 1년에 한 번만 담그기 때문에, 장담그기는 매우 중요한 주부의 집안일이다. 그래서 장담그기와 관련된 속설이 한국문화에서 발달했다. 그 중 하나가 특정한 날에 장을 담가야 좋다는 속설이다. 12지지 중 말날(오일)에 장을 담가야 좋다는 것이 일반적인데, 손 없는 길일로 여겨지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 속설은 농촌과 어촌에서 모두 일반적으로 믿어진다.
그런데 어촌 마을인 왕포에서는 장담그기와 관련해서 불운을 가져오는 손이 없는 날인 길일을 택하는 것과 함께 물때도 고려해야 하는 속설이 있다. 할머니들은 썰물 때 장물을 메주에 부어야 좋다고 말한다. 밀물 때 장을 담그면 장이 괼 수 있어 안 좋기 때문이다. 여름이면 종종 밀물일 때 바다에 거품이 낀다[사진 11]. 아마도 밀물에 생긴 거품이 장이 괴는 거품을 연상시켰을 것이다. 이제는 모든 여성이 이 속설을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부는 아직도 이 관습을 지킨다. 한 할머니는 "장 담는 것은 시집오기 전에 들녘에 살아서도 알았다. 장은 날로는 말날 담는 것이다. 그런데 썰물에 장을 담아야 한다는 얘기는 이리 시집와서 배웠다."라고 말했다. 이 속설은 물때 따라 사는 어촌 특유의 문화적 금기인 것이다.
이 글은 한국 곰소만 어촌의 민족지적 사례를 토대로 물때 개념으로 특징 지어지는 조석과 시간에 대한 지역 어민들의 전통지식을 살펴보았다. 15일 주기 물때체계에 초점을 맞추어 그 구조적 원리와 민속구분법을 밝혔다. 물때는 사리와 조금을 중심으로 조직되며, 특히 사리는 물때 따라 어로활동을 하는 어민들에게 중요한 경향이 있다. 이 연구는 또한 어민들의 생활이 바다와 육지에서 물때와 밀접히 관련되는 방식을 살펴보았다. 해양환경에 기대어 사는 어민들은 그들의 삶 속에 바닷물의 리듬을 체화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바다와 육지에서 물때에 맞춰 살아가는 어민들의 생활방식을 '물때일'이라는 그들의 관용적 표현을 확장시킨 개념인 '물때생활'로 정의했다. 물때에 대한 전통지식은 자연현상인 조석현상이 어떻게 인간에 의해 인지되고 이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화적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
필자는 또한 어민들이 사용하는 민속명칭 '물때'가 다의적이며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더 포괄적임을 밝혔다. 이 글은 어민들이 조석과 시간의 다양한 범주들을 지시하는 데 '물때'를 사용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후속 연구에서는 어민들이 조석현상을 개념화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다층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을 담고 있는 '물때'를 한국 어민 문화의 관점에서 재겈토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한국 어민들의 물때 인지체계의 일부만을 소개하였는데, 그 핵심을 이루는 15일 주기 물때의 구조와 원리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글에 소개 된 물때체계는 일반적인 물의 상태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 어민들은 또한 물의 가변성을 인지하고 특수한 물의 상태를 구분한다. 게다가 어로환경이 변함에 따라 물때의 민속분률법에서도 세대별 차이가 발견된다. 이러한 문제들은 향후 연구를 통해 논의될 것이다.
다른 지역의 어민들은 그들의 상이한 해양환경에 대한 이해를 발달시켜 왔다. 연근해어업을 하는 사람들과 원양항해를 하는 사람들은 조석에 대한 다른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석과 관련된 해양문화는 별로 연구된 바도 없고, 조석에 대한 전통지식은 아직까지 무형유산으로서 거의 주목받지도 못했다. 카보넬(Carbonell: 2012)은 카탈로니아 어부들의 기후에 대한 전통지식을 인간과 환경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무형문화유산으로 주목한 바 있다. 날씨와 마찬가지로 조석현상 또한 어민들의 지역 해양환경에 대한 지식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한다. 한국 어민들의 물때에 대한 전통지식도 무형문화유산으로서 주목할 만한 가지가 있다. 오늘날 인간의 지속가능한 생활방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해양 환경과 자원의 중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물때에 대한 전통지식을 인류 문화유산의 한 측면으로서 인식하는 것은 "인류가 자신의 주변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 중 하나를 보존하고 보호하는 것"을 의미한다(Carbonell: 2012, p.74).
끝으로, 필자는 한국 어민들의 물때 구분법이 문화적 다양성의 관점에서 "민속 과학 지식(folk scientific knowledge)"(Casson: 1981)임을 강조한다. 1960년대 이후 한국사회는 급속한 근대화를 겪으면서 서구적이고 근대적인 과학 지향적 사고에 뿌리를 둔 지식의 위계화 속에서 전통적이고 지역적인 지식은 폄하되고 그 지속가능성은 위협받아 왔다. 해양환경에 대한 한국 어민들의 지식 또한 인간의 경험 세계가 조직되는 방식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풍부하게 해주는 귀중한 지적 자산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