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무형유산: 독립적인 이니셔티브(initiatives)의 역사

Writer : 윌리엄 채프먼(William Chapman)
Year : 2019


개요


본 논문은 무형유산의 요소들을 인정하고 보호하는 과업에서 미국이 착수한 역사를 살펴본다. 본 논문은 1920년대 말에 착수된 미국 의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의 프로그램들부터 1930년대부터 시작된 여러 개의 스미소니언 협회 프로그램(Smithsonian Institution Programmes)까지, 특히 1967년에 시작된 스미소니언 민속축제 (Smithsonian Folklife Festival)와 보다 최근에 착수된 NEA 내셔널 헤리티지 펠로우십 프로그램(NEA National Heritage Fellowship Programmes)에 대한 미국의 이니셔티브의 시작을 추적한다. 본 논문은 더 나아가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ational Park Service)의 업무와 부족 보존 프로그램(Tribal Preservation Programmes) 그리고 보다 최근에 착수된 태평양제도 프로그램(Pacific Island Programmes)도 살펴본다. 마지막 절에서는 무형유산의 여러 측면들을 확인하고 보존하기 위한 지역 차원의 노력과 도시 전체의 노력을 살펴본다. 비록 미국이 유네스코의 업무 참여를 공식적으로 철회했지만, 전통 방식의 문화적 표현을 증진하고 보호하기 위한 노력에서 이룬 중요한 진전과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국제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for the Safeguarding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의 목적과 일치하는 미국의 접근방법에 안심이 된다.



서론

유엔의 창립회원국인 미국은 유엔총회 개최국이자 유엔 연간 예산의 약 28%를 제공하며 유엔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미국은 정책 및 관리 사항들에 대해 유엔과 불화하여 합의된 자국의 유엔 분담금을 정기적으로 보류해왔다. 1983년 미국은 비록 2003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잠시 자금 지원을 재개했지만 유네스코에 대한 지원을 별도로 중단하였다. 유네스코가 (오바마 행정부 하에서) 2011년 팔레스타인을 회원국 으로 인정하기로 결정한 후, 미국은 다양한 시기와 상황에서 제정된 20년 이상 된 법률의 자동 적용에 따른 분담금을 다시 보류하였다. (Rubin: 2013; UNESCO.US: 2017). 이 입장은 2017년 10월 렉스 틸러슨 (Rex Tillerson) 국무장관이 미국은 유네스코 참여를 종료하며,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 전에 법적으로 지급해야 할 분담금의 미지급 잔액 6억 달러를 지급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 재확인 되었다(Rosenberg and Morello: 2017).

유네스코 총회는 미국이 8년간의 유네스코 재참여를 시작한 해인 2003년 10월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국제협약을 채택하였고 (UNESCO: 2003; Kurin: 2004), 2016년까지 171개 회원국들이 이 협약을 비준하였다. 미국은 분명히 비준 쪽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그 기세는 미국이 다시 한 번 이 국제기구로부터 탈퇴하면서 종료 되었다. 미국은 지금 자국의 현재 정치상황을 고려할 때 방침을 번복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Curtis: 2017).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협약이 시행될 때 미국이 유네스코를 탈퇴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미국은 문화유산의 많은 측면 들을 보존하기 위해 강력한 정부 및 제도적 지원을 개발하였으며 다른 나라와 공유할 내용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노력은 장기적인 성격을 띠었으며 결과적으로 미국이 여러 정부기관과 비영리단체의 역할 분담을 통해 문화유산 보존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많은 유산 보존 옹호자들은 국제적 수준의 참여와 리더십에서 손을 떼기로 한 미국의 결정에 대해 몹시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많은 유산보존 옹호자들은 또한 미국이 어느 시점에는 유네스코에 재가입하여 유형 문화자산의 보호 및 보존과 또한 보다 최근에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협약이 통과된 후 무형무산자산의 보호 및 보존을 증진할 것으로 희망하고 있다.

그 동안 잠시 멈추고 미국이 과거 무형유산에 어떻게 접근 하였는지 그리고 정부 부문과 비정부 부문 모두에 있어서 미국의 정책에서 이러한 노력에 대한 표현 및 지원 방식에 대해 고찰해야 할 가치가 있다. 무형유산의 보존은 분명히 미국에서 강력한 지원을 받았다. 게다가 미국의 접근방법은 무형유산을 개념화하고 인정 및 계속성을 증진하기 위한 방안들(여전히 무형유산에 대한 국제적 이해를 기여할 수 있는 방법과 이상)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점점 정교해지는 것을 증명하였다.



의회도서관

미국의 문화보존 노력은 1928년 의회도서관의 음악과에 미국민요 기록보관소의 창설 등 192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록보관소는 로버트 윈슬로우 고든(Robert Winslow Gordon, 18881961)의 촉구와 허버트 풋남(Herbert Putnam, 1861-1955)의 권장과 의회도서관의 권장으로 문화보존을 위해 노력하였고 비로소 1930년 대에 존 A. 로맥스(John A. Lomax, 1867-1948)가 도서관에 와서 민속분야 최초의 유급직책(유명한 민속음악 수집가인 그의 아들 앨런 로맥스(Alan Lomax, 1915-2002)에게 주어진 직업)을 창설 하였다. 나중에 벤자민 보트킨(Benjamin Botkin, 1901-1975)이 직원으로 합류하여 악보 외에도 점점 증가하는 음반을 포함시키 도록 수집의 범위를 확대하였다(Groce 2016)[사진 1].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대에 (그 동안 수년간 알려지게 된) 미국 의회도서관의 ‘민속기록보관소(Folk Archive)’는 던컨 엠리치 (Duncan Emrich, 1908-1977)와 그의 후계자 레이 코슨(Rae Korson, 1901-1991)의 지도 아래 계속 확장되었다. 저명한 민속학자 조지 코슨(George Korson)의 아내인 코슨은 도서관의 참고목록 구역 (reference section)을 확장하고 33-rpm 앨범으로 변환된 음반의 수를 증가시켰는데, 이들 앨범은 산업표준이 되고 있었다. 1950년대 말과 1960년대는 초창기의 민속축제와 개인공연 그리고 상업음반의 급격한 증가가 활력을 불어넣음으로써 대중의 관심이 활발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새로운 관심은 민속 애호가들의 새로운 하위 문화의 탄생과 동시에 일어났으며 핵무기 감축, 사회적 정의 및 인종평등을 위한 운동과 함께 어우러졌다(Hardin: 2004).

1976년 미국 의회는 미국독립 200주년을 둘러싼 열정을 반영하여 미국민속보존법(American Folklife Preservation Act, 공법 94-201)을 통과시켰는데, 이 법에 따라 연구, 학문, 교육, 공연, 전시회 및 간행물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의 민속생활을 보존하고 소개하기 위해 미국 의회도서관에 미국민속센터(AFC)가 창설되었다. 1978년 미국 의회도서관은 당시 민속기록보관소(Folk Archive)로 알려진 것을 음악과(Music Division)에서 이 신설 센터로 이관하는 중요한 조치를 취했다(Hardin: 2001; Cutting-Baker and Farley: 1994).

최초의 AFC 센터장은 저명한 음악가이자 민속학자인 앨런 재버(Alan Jabbour, 1942-2017)였다. 시리아계 미국인인 재버는 1968년 듀크대학교(Duke University)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기 전까지 그의 고향 플로리다주에서 음악을 공부하였다. 그의 초기 관심은 노스캐롤라이나주, 버지니아주 및 웨스트버지니아주를 포함한 미국 상남부 지역(Upper South)의 민속음악이었으며, 그는 고전음악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쌓은 훈련을 전통가요의 녹음과 공연에 활용 하였다. 그는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에서 영어와 민속을 가르치는 조교수로 근무하면서 민속문화기록보관소 소장이 되었으며, 직함은 신설 AFC 센터장으로 바뀌었다. 재버는 즉시 문서화에 두 가지 중요한 이니셔티브를 도입하였다. 하나는 시카고에 초점을 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지아주 중남부지역에 초점을 둔 것이었다. 이와 유사한 노력은 메인주 북부지역에서, 매사추세츠주 로웰에서, 뉴저지주 파인 배런스에서, 웨스트버지 니아주 뉴리버 협곡에서, 그리고 네바다주 파라다이스 밸리에서 뒤따라 이루어졌다(Jabbour: 2005).

1979년 미국민속센터(AFC)는 민족지학 자료의 왁스 실린더 음반 1만여 개를 테이프에 옮겨 담기 위한 야심찬 노력으로 연방 실린더 프로젝트(Federal Cylinder Project)에 착수하였다. 이 프로 젝트는 역사, 물질문화, 축하행사 및 기타 관습에 동등한 역점을 두기 위한 센터의 활동범위 확대와 동시에 착수되었으며, 또한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문화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American Folklife Center: 2011). 1981년 센터의 활동범위 확대를 반영하여 센터보다 먼저 창설된 민요기록보관소(Archive of Folk Song)가 지금은 보다 일반적으로 미국민속센터(AFC)의 기록 보관소로 불리는 민속문화기록보관소(Archive of Folk Culture)의 일부가 되었으며 센터의 기타 업무와 구별되고 있다(Groce: 2016).

기술적으로 미국민속센터(AFC)의 업무는 비록 무형유산 증진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확실히 있지만 기록유산(documentary heritage) 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 아래에 속한다. 1920년대에 센터가 업무를 시작할 때부터 센터에 의해 수집된 음반과 기타 자료들은 살아있는 예술가들이 보다 오래된 공연과 음악형식을 탐색하는데 도움이 되어왔다. 센터는 이런 방식으로 문서화와 (그리고 기억과) 살아 있는 전통의 영구보존 사이에서 깔끔하게 구분되는 것을 전사한다.



스미소니언 협회

1980년대 초에 이르렀을 즈음에 스미소니언 협회(Smithsonian Institution)는 민속문화기록보관소의 민속 및 대중문화 진흥활동에 합류하였다. 1967년 초에 스미소니언 협회의 박물관 서비스 책임자인 짐 모리스(James R. Morris: 2016)는 미국 전역에서 민속전통을 축하하도록 야외축제를 창설하자고 제안하였다. 모리스는 전에 뉴포트 민속축제(Newport Folklife Festival)와 관련이 있었던 인물인 랄프 린즐러(Ralph Rinzler, 1934-1994)를 그 이니셔티브를 이끌도록 고용하였고 1967년 7월 최초의 연례적인 미국민속축제(Festival of American Folklife)가 내셔널 몰(National Mall)에서 개최되었다(Spitz: 2016). 4,900달러의 예산으로 개최된 이 최초의 축제에는 84명이 참가했는데, 참가자들 중에는 존스와 시 아일랜드인들(Jones and the Sea Islanders), 블루스 아티스트 존 잭슨(John Jackson), 스토리텔러 재니 헌터(Janie Hunter), 카우보이 가수 글렌 오를린(Glenn Ohrlin), 리바 코튼(Libba Cotton), 데잔의 올림피아관악단(Dejan’s Olympia Brass Band), 그리고 킹 아일랜드 에스키모 무용단(King Island Eskimo Dancers)이 있었다. 축제는 43만 명의 방문객들을 끌어들였고 상당히 많은 미디어의 주목과 미국의회 의원들의 지지를 받았다 (Smithsonian: 1967). 시드니 S. 딜런 리플리(Secretary S. Dillon Ripley, 1913-2001)는 열성적이었고 이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지지하였다 (Kurin: 1991).

짐 모리스는 이 축제 외에도 민속생활에 관한 심포지엄도 조직하였다. 이 심포지엄은 누구보다도 베테랑 음악 수집가 앨런 로맥스(Alan Lomax, 1915-2002), 녹음 엔지니어 모지스 아쉬(Moses Asch, 1905-1986), 아프리카 민속학자 로저 아브라함스(Roger Abrahams, b. 1933), 독일계 미국인 민속학자 돈 요더(Don Yoder, 1921-2015), 유타주 기반 학자 오스틴 파이프(Austin Fife, 19091986), 민족음악학자 도날드 나이트 윌거스(Donald Knight Wilgus, 1918-1989), 그리고 선구적인 민속학자 리차드 도슨(Richard Dorson, 1916-1981)의 참석이 특색을 이루었다. 참석자들은 집단적으로 종합 적인 민속 프로그램을 스미소니언에 두자고 제안하였다. 처음에는 스미소니언의 공연예술부(Division of Performing Arts)의 일부인 독립 적인 민속 프로그램 사무소(Office of Folklife Programs)가 1980년에 등장하였다(Smithsonian Institution Archives: 2017).

1987년 민속 프로그램 사무소는 1948년 모세스 애쉬(Moses Asch, 1905-1986)에 의해 창설된 라벨로서 포크웨이즈 레코즈 (Folkways Records)의 음반 원본, 영업기록부, 통신문 및 사진자료 등으로 구성된 모세스 앤드 프랜시스 애쉬 컬렉션(Moses and Frances Asch Collection)을 인수하였다. 2,168개의 표제가 있는 이 애쉬 컬렉션은 진정으로 세계 최대의 민속음악 단일 저장소 가운데 하나이다. 이 컬렉션은 나중에 최초의 민속축제 감독이자 오랫동안 민속 프로그램 사무소 소장을 역임한 랄프 린즐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랄프 린즐러 민속 아카이브 및 컬렉션(Ralph Rinzler Folklife Archives and Collections)’으로 알려진 것의 핵심을 형성하였다. 이 컬렉션은 결국 현재 스미소니언 포크웨이즈 음반(Smithsonian Folk- ways Recordings)의 플레이 리스트를 형성하는 페어돈(Paredon), 쿡 (Cook), 다이어-베넷(Dyer-Bennet), 패스트 포크(Fast Folk) 및 모니터 (Monitor) 레코드 레이블에서 나온 추가 음반들을 포함하였다. 유럽계 미국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카리브인 그리고 미국 원주민의 음악공연과 전통에 특히 강한 이 스미소니언의 컬렉션은 현재 민족 공연 전통, 구어 음반, 자연과 과학의 소리, 직업 민속, 가족 민속의 진정으로 세계적인 집합체까지 확대되고 있다(Smithsonian Institution: 2017a).

현재 민속문화유산센터(Center for Folklife and Cultural Heritage)는 9개 스미소니언 연구센터 가운데 하나이다. 이 센터도 또한 4개의 독립적인 행정단위와 활동포털로 나누어진다(Smithsonian Newsdesk: 2013). 본부는 스미소니언의 다른 박물관 및 연구센터 근처의 내셔널 몰에 위치하고 있다. 포크웨이즈 음반 컬렉션(Folkways Recordings Collection)은 이 센터의 가장 인기 있는 측면 가운데 하나 이며 4개 활동분야 중 하나이다(Smithsonian Folkways: 2017a). 1948년 부터 이 라벨에 의해 제작된 음반들은 1987년부터 랄프 린즐러 민속 아카이브 및 컬렉션의 일부가 되었으며 현재 스미소니언을 통해 온라인으로 구입하거나 소매점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두 번째 주요 활동은 랄프 린즐러 민속 아카이브 및 컬렉션의 활동이며 이 센터의 연구지부를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학자들이 이용하도록 계획된 것이며 예약 후 이용할 수 있다. 이 컬렉션의 독서실은 워싱턴 남서부 메릴랜드 애비뉴의 내셔널 몰에서 약간 떨어져 있다. 그러나 수집품의 대부분은 외부에 저장되어 있으며 선의의 연구원들이 요청하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수집품은 발견 보조기구와 함께 사진 바인더, 사진 슬라이드, 민속축제에서 수집한 콘택트 시트, 별도의 다이앤 데이비스 및 로버트 C. 멀로운 사진 수집품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민족음악학, 인류학에 관한 인쇄된 모노그래프와 음악사업의 기록물도 있다(Smithsonian: 2017b).

아카이브도 역시 별도의 시청각 자료 연구수집품이 포함되어 있다. 이중에는 1만 7천여 개의 상업용 디스크 음반, 4천 개의 아세 테이트 디스크, 45만 개의 오디오테이프, 2천여 개의 CD, 2천 개의 비디오테이프, 그리고 5백 선형피트의 영화필름이 있다(Ralph Rinzler Folklife Archives and Collections: 2016).

세 번째 관심의 초점은 스미소니언 글로벌 사운드 컬렉션 (Smithsonian Global Sound collection)이다. 2005년 착수된 글로벌 사운드 덕택에 연구원들과 음악 애호가들은 스미소니언 포크웨이즈 음반, 뉴델리에 있는 미국인도학연구소 기록보관소 및 연구센터 (ARCE),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레이엄스타운에 있는 국제아프 리카음악도서관(ILAM)을 이용하여 세계 음악전통의 음반들을 찾을 수 있다. 이 음반들은 2009년부터 스미소니언 포크웨이즈 웹 사이트에 직접 연결되어 있다(Smithsonian Folkways: 2009).

스미소니언은 민속문화유산센터와 민속기록보관소 외에도 미국 생활에서 중요한 소수민족의 문화적 기여를 강조하려고 노력하는 스미소니언 아시아태평양미국센터(Smithsonian Asian Pacific American Center)와 스미소니언 라티노센터(Smithsonian Latino Center)도  유지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센터는 광범위한 문화생산 전반에 걸쳐 제작되는 프로그램을 주관한다. 최근에 개최된 한 전시 회는 미국에서의 무슬림의 삶에 관한 전시회인 “살람(Salaam)(나는 평화 속에 온다)”이다. 이 센터는 또한 저명하고 창의적인 사상가와 예술가들과 함께 문화적 이슈를 탐구하는 일련의 ‘팝업경험’인 문화실험실(Culture Labs)을 재정적으로 지원한다(Smithsonian Asia Pacific Center: 2017).

라티노센터는 동등하게 활동적인 일련의 프로그램 및 전시회를 주관한다. 최근에 개최된 전시회 중에는 “카리브해 원주민 유산 (Caribbean Indigenous Legacies)”과 “우리의 아메리카: 미국 예술 속에서 라틴아메리카계의 존재(Our America: The Latino Presence in American Art)” 그리고 라틴아메리카계 운동가이자 노동 조직자의 삶에 초점을 맞춘 “하나의 삶: 돌로레스 후에르타(One Life: Dolores Huerta)”가 있다. 공공 프로그램 중에는 시 낭독, 아티스트 토크, 그리고 미국의 히스패닉계 인구 및 남북 아메리카의 기타 지역에 대한 그들의 관계와 관련된 광범위한 문화적 이슈에 패널 토론이 포함되었다(Smithsonian Latino Center: 2017).



스미소니언 민속축제

스미소니언의 한 가지 주요활동은(1998년 이후로 국제적 활동범위를 반영하기 위해 ‘스미소니언 민속축제’로 명칭 변경) 여전히 민속축제이다. 현재 5년차에 들어선 이 축제는 비록 상당한 다양성도 고려하고 있지만 프로그래밍에 대한 주제별 접근방법을 역사적으로 이용하여왔다. 1967년 개최된 공연 중에는 미국 고적대 연주, 관악단 연주, 현악단 연주, 뉴올리언스 재즈 및 케이준 음악 등이 있었고 아울러 미국 원주민들의 바구니 전시회와 다양한 도예가, 은세공사, 방적공 및 직공들의 작품도 있었다. 1968년은 텍사스 중심으로 축제가 열렸으며 블루그래스 음악, 버터 휘젓기, 양털깎기, 그리고 비누와 사탕 만들기 등의 추가 공연 및 시연이 있었다. 그 다음해는 펜실베이니아가 축제의 중심이 되어 몇 가지 추가 활동이 있었으며, 그리고 나서 아칸소가 중심이 되었고 이어서 오하이오가 중심이 된 후 메릴랜드가 중심이 되었다. 1970년대에 이를 즈음에 주제는 지역의 민속산출물(folkloric output)에 초점을 맞추어 북부평원(과 캘리포니아)을 다루고 이어서 북동부 지역과 오대호(Great Lakes)를 다루었다. 1978년 주제는 뉴멕시코와 남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 원주민 공동체였다(Smithsonian Folklife Festival: 2017)[사진 2].

최근 수년간 축제의 범위는 점점 국제적인 것이 되었다. 2002년 주제는 실크로드(The Silk Road)였다. 2004년 아이티, 2007년 메콩강, 2008년은 부탄이 축제의 중심이었다. 이 트렌드는 그 후 연이어 개최되는 축제에서 계속되었다. 2010년에는 아시아태평양 연관관계에 초점을 맞추었고, 다음해에는 콜롬비아였다. 문화유산 전승에 있어서 여성의 역할은 역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음악 공연에 초점을 맞춘 2012년의 우선적인 주제였다. 이어서 2013년 헝가리, 2014년 중국, 2015년 페루, 2016년에는 바스크 유산이 축제의 중심이 되었다. 전형적으로 이 축제는 한 개 이상의 주제가 특징이다. 애팔래치아 중심의 2003년 프로그램도 역시 스코틀랜드 중심의 구역과 말리 중심의 구역이 포함되었다. 부탄 중심으로 개최된 2008년 축제는 텍사스와 북미우주국(NASA)에 공간을 제공하였다. 중국은 케냐와 함께 하였고 바스크 문화도 역시 캘리 포니아의 소리(Sounds of California)에 관한 프로그램이 포함되었다. 이들 축제는 각각 음악 및 무용 공연, 공예 및 요리 전시회, 스토리 텔링, 그리고 방문객 참가 및 참여 기회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Smithsonian Folklife Festival: 2016).

1976년 440만 명의 방문객이라는 최고 기록 이후로 축제는 계속해서 많은 참여자를 끌어들였다. 40년 동안 무려 3,800만 명의 사람들이 매년 여름 2주의 기간 동안 내셔널 몰을 방문하여 축제에 참여하였다(Duong: 2008). 축제는 내셔널 몰 위에 스미소니언 캐슬과 자연사박물관 사이에 펼쳐진 텐트 도시(tent city)를 점유한다. 시간은 오전 11시와 오후 5시 사이이고 저녁에는 특별행사와 공연이 이루어 진다. 전형적인 행사로는 공예와 요리의 시연, 스토리텔링 세션, 문화 상품용 삽화, 그리고 음악공연이 있다. 2016년 축제는 120개의 텐트가 있었는데, 일부는 각각 여러 개의 전시물이 있었고 다른 일부는 각각 한 개의 전시물이 있었다. 바스크 문화를 위한 용도로 배정된 두 개의 주요 구획은 두 개의 광장과 캘리포니아의 소리 (Sounds of California)를 포함하고 축제를 위해 따로 정한 블록 크기의 네 개 구역 중 하나를 포함하였다(Smithsonian Folklife Festival: 2016). 장애를 가진 방문객들을 위해 미국수화 해석기와 일정 및 기타 정보의 점자 버전을 비롯하여 특별 준비물이 마련되었다(Smithsonian Folklife Festival: 2017).

여름에 개최되는 스미소니언 민속축제는 인기 있고 여러 가지 면에서 성공적이여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많은 작가들은 축제를 통해 표현되는 ‘문화적 다양성’의 아이디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다. 베트남의 미국학 학자 안홍두옹(Anh Hong Duong)은 축제가 미국의 다양성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지 의아해하며 축제의 전반적인 야망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녀는 또한 축제가 학자들의 관심과 문화유산과 문화표현에 대한 보다 대중적인 이해 사이에 충분히 가교 역할을 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 하였다(Duong: 2008, pp.15-19). 미국학 학자 헤더 다이아몬드 (Heather Diamond)는 1989년 축제를 통한 하와이 문화의 표현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자신들의 문화유산에 대한 하와이인들의 견해와 축제 직원들의 견해 사이에서 주목 할 만한 괴리를 확인 하였다. 그녀는 또한 ‘진정한 것(authentic)’으로 간주되는 것과 ‘진짜가 아닌 것(inauthentic)’으로 간주되는 것을 분리하여 어떤 의미에서 축제 참가자 자신들로부터 이니셔티브를 훔치는 축제의 내재적 성향을 비판하였다(Diamond: 2008, pp.9-10).



NEA 국가유산 펠로우십 프로그램

전통적인 형태의 공연과 생산을 인정하고 영구적으로 보존하기 위한 가장 혁신적인 노력 가운데 하나는 국립인문재단(NEH)의 국가 유산 펠로우십 프로그램이었다(Binkiewicz: 2004). 일본의 ‘인간국보’ 개념을 모델로 삼아 착수된 이 프로그램은 전통적인 공연예술가와 민속장인을 인정하고 유지하려는 미국의 노력에서 빈틈을 다루고자 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1982년에 착수되었으며 우리나라의 전통예술 유산으로 식별되는 것 속에서 뛰어난 실천가(outstanding practitioner) 를 인정한다(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2017; Shiele: 2017) [사진 3].

첫해의 펠로우들은 미국 전역의 저명한 공연자와 예술가 15명이 포함되었다. 듀이 발파(Dewey Balfa)는 루이지애나주 바이우 그랑 루이스 출신의 케이준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는 1964년 뉴포트 민속 축제(Newport Folk Festival)에 초대되기 전에 1940년대와 1950년대 동안 전문적으로 공연을 하던 4세대 음악가인 그의 아버지로부터 지식을 얻었다. 또 한 사람인 첫해 수상자 베시 존스(Bessie Jones)는 아프리카와 노예제도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노래와 공연의 전통을 유지하는 시 아일랜드(Sea Island)의 유명한 가수였다. 토미 자렐(Tommy Jarrell)은 1900년대 초에 블루리지 마운틴(Blue Ridge Mountain)의 음악가로 경력을 쌓기 시작한 노스캐롤라이나주 서리 카운티(Surry County)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이 프로그램은 그 이후로 해마다 동일한 선정 형태를 따랐다. 1983년은 셰이커 공동체(Shaker community)의 구성원이자 아직도 전통가요를 공연하는 극소수의 생존 멤버 가운데 한 사람인 시스터 밀드레드 바커(Sister Mildred Barker),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의 스토리텔러 레이 힉스(Ray Hicks), 유명한 블루스 아티스트 존 리 후커 (John Lee Hooker), 그리고 봄바(bomba)와 플레나(plena, 아프리카에서 영감을 얻은 노래, 드럼연주 및 춤) 공연자 라파엘 세페다(Rafael Cepeda)가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해였으며 그들은 모두 평소처럼 펠로우십 수상자로 선정된 15명 가운데 포함된 사람들이었다. 1984 년은 아코디언 연주자 클리프턴 셰니에(Clifton Chenier), 도예가 벌론 크레이그(Burlon Craig), 무용가 하워드 ‘샌드먼’ 심스(Howard ‘Sand man’ Sims), 그리고 클라리온 연주자 데이브 타라스(Dave Tarras)가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해였으며, 1985년은 반조 연주자 릴리 메이 레드포드(Lily May Ledford), 숟가락 연주자 호레이스 ‘스푼즈’ 윌리 엄스(Horace ‘Spoons’ Williams), 그리고 카우보이 가수 글렌 오를린 (Glenn Ohrlin)이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해였다.

보다 최근의 몇 년은 같은 맥락에서 계속되었다. 2014년의 펠로우들 중에는 모호크족 원주민 바구니 메이커 헨리 아케트(Henry Arquette)와 아일랜드의 저명한 스텝댄서이자 이불제작자인 캘롤린 마즐루미(Carolyn Mazloomi)가 포함되었고 그 다음 해는 도예가이자 교사인 야리 리반(Yary Livan)과 ‘블루스 닥터’ 드링크 스몰(Drink Small) 그리고 일본무용가 거트루드 유키 츠츠미(Gertrude Yukie Tsutsumi)가 포함되었다. 그리고 2016년은 알래스카 원주민(틀링깃족) 직공 클라리사 리잘(Clarissa Rizal)과 마디그라 인디언 장인 겸 음악가 조셉 피에르 ‘빅 치프 몽크’ 보르도(Joseph Pierre ‘Big Chief Monk’ Bordeaux) 그리고 자작나무 껍질 카누 메이커 테레사 세코드(Theresa Secord)가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해였다(Larson: 2016).

펠로우십 상의 구성과 성격에서 유일하게 주목할 만한 변화는 수상자의 수가 1982년 20명에서 1990년대에는 16명, 최근 수년에는 12명으로 점차적으로 감소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수많은 예술 및 공연전통 가운데 분포되어 있는 다양한 수상자들을 인정하여 왔다. 수상자 선정과정도 역시 연령과 성별을 초월하여 나라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헌신적인 예술가와 장인 가운데 일부에 대한 대표 적인 표본 추출이 가능하다.

2017년 현재 300여 명의 예술가들이 이 프로그램을 거쳐 인정을 받았다. 펠로우십이 스미스소니언 민속 프로그램 사무소와 맺고 있는 긴밀한 연계에 대한 후속으로 60여 명의 선정된 펠로우들은 또한 포크웨이즈 라벨에서도 두드러진 활약을 펼쳤다. 자체적인 공평성의 목적에 충실한 NEA 펠로우십 프로그램은 수상자 최종 선정 패널에 자신들이 선택한 후보들을 전달하는 ‘보통 시민들’의 후보 지명에 의존한다. 수상자로 지명된 모든 사람들은 워싱턴 DC로 이동하여 상을 받고 연례 콘서트에 참여한다(Smithsonian Folkways: 2017b).

국가유산 펠로우십은 많은 예술 관련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NEA의 다른 이니셔티브와 함께 현재 위협을 받고 있다. 이 프로 그램이 성공을 거두고 있고 미국의 문화구획 전반에 걸쳐 열성적 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에도 현재의 예산 제안서는 NEA의 재정을 바닥내고 있다.



국립공원관리청(NPS)

1916년 설립된 국립공원관리청(National Park Service)은 전통 문화관습을 인정하는데 있어 여전히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국립공원 관리청은 59개 국립공원과 417개의 기타 부서 그리고 21,651명의 직원들을 아우르는 이 나라의 국립공원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책임 외에도 1966년의 획기적인 국가역사보존법(National Historic Preservation Act) 하에서 역사적 보존 및 유산에 대한 노력의 주도기관이기도 하다. 이러한 노력은 문화적 및 역사적으로 중요한 미국의 재산목록인 국가사적지등록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의 관리와 주 소속, 준주 소속 및 1992년 후 부족 소속 역사보존청의 업무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역사보존기금(Historic Preservation Fund)의 관리 그리고 미국의 보물 구하기(Save America’s Treasures) 및 미국 보존하기(Preserve America)와 같은 특별 프로 그램을 포함한다(Stipe 2003).

국가사적지등록부(NRHP)는 미국 내에서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장소에 영향을 미치는 중심 프로그램이다. 역사적 건물, 현장, 지방 및 물품을 인정하고 이상적으로 보호하도록 설계된 이 국가 등록부는 분명한 물리적 재산이 있는 역사적 장소와 현장에 초점을 맞추었고, 계속해서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재산은 기념조각품과 같은 개별 기념물부터 역사적 주택, 고고학 유적지, 그리고 보다 큰 규모의 역사적 및 고고학적 지방까지 다양하다(National Park Service: 2017a). NRHP는 또한 설계된 풍경과 고장 특유의 풍경을 모두 포함하고 아울러 전쟁터, 다리, 등대, 역사적 광산, 묘지, 그리고 기타 많은 역사적 재산을 포함한다. 2017년 현재 총 8만여 개의 개별 목록들이 있으며, 이중 다수는 다양한 건물과 부지 및 기타 여러 특징들을 포함하고 있다(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 2017).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PS)은 1980년대에 중요한 문화적 의미가 있으나 정상적으로 역사적 현장과 연관이 있는 종류의 역사적 자원 또는 자산이 결여된 장소들을 보다 잘 다루기 위해 ‘전통문화재 (TCP)’로 알려진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였다. 인류학자 패트리샤 파커 (Patricia Parker)와 고고학자 톰 킹(Tom King)이 태평양제도인과 미국 원주민 사이에 들어가 실시한 현장작업 경험의 결과로서 그들에 의해 시작된 TCP 개념은 미국 원주민 집단의 전통신앙과 연관된 것들과 같은 장소, 장기 거주민들이 소중히 여기는 문화전통을 반영 하는 조직화에 의해 이루어진 농촌지역 공동체, 특정 문화집단의 전통적인 고향인 도시 동네, 미국 원주민 종교 실천가가 역사적으로 찾아가서 전통적인 문화관행규칙에 따라 의식활동을 수행하는 장소, 또는 지역공동체가 전통적으로 역사적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경제적, 예술적 또는 기타 문화적 관행을 수행해온 장소에 적용 되었다(Parker and King: 1990; National Park Service: 2012)[사진 4].

TCP 개념은 비록 국가등록부 자체의 강조에 따라 ‘장소’에 특히 얽매여있지만 등록 노력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끄는데 도움이 되었다. 가장 중요한 점으로서, TCP 접근방법은 주의를 사물에서 옮겨 사물과 연관된 사람 쪽으로 기울이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것은 완벽한 해법은 아니었지만 국가등록부가 장소의 지속적인 문화적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보다 장소를 보존하는데 더 열중하고 있다는 장기적인 우려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

비록 국립공원관리청(NPS)의 노력 가운데 상당부분이 아직도 유형유산의 보존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무형유산이 유형유산 유적지를 해석하고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폭넓게 인정되고 있다. 이것은 특히 엄격히 ‘역사적’ 가치보다는 ‘문화적’ 가치를 지닌 유적지를 더 많이 포함시키기 위해 국가등록부(National Register)가 점점 확대되는 것에서 반영되고 있다. 이중에는 미국 내에 수많은 ‘차이나타운’이 지정되는 것과 기타 민족지역 및 콘클레이브 (conclaves)를 지정하는 것이 포함된다.

최근의 좋은 예 가운데 하나는 20세기 초의 다양한 건축 유형 으로 구별되며 특히 1960년대에 시작된 아프리카계 미국인 거주자 들과의 연관성에 의해 구별되는 지역인 로스앤젤레스 내의 뷰파크 역사지구(View Park Historic District)가 있다(2016년 등재). 또한 시카고에 있는 필젠 역사지구(Pilsen Historic District)는 필적할만한 민족 이야기가 있다.(2015년에 등재된) 필젠은 1871년 화재 후 19세기 말에 시작되어 20세기 중반까지 보헤미아인 정착촌과 연관을 갖게 되었다. 1950년대에 시작된 이 동네는 점점 멕시코 이민자들과 연관을 갖게 되었고 멕시코 이민자들은 21세기 초 즈음에 주민의 93%를 구성하였다. 그 ‘이후’ 역사의 중요성과 이 지구의 구조 및 성격에 대한 라틴 아메리카인들의 기여는 이 지구 성격의 분명히 ‘무형적’ 측면이 인정되어 국가등록부 문서에서 중심적으로 인용하고 있다(Sommers: 2016).

이 나라의 역사에서 특정 문화와 연관되어 현재 등재되어 있는 많은 지구 및 개별 재산은 두 가지 예만 있다. 민속학자 로리 케이 소머즈(Laurie Kay Sommers)가 역사 보존에 대한 보다 인간적인 접근방법으로 인정하는 것의 다른 최근의 예로는 플로리다주 피넬 라스 카운티 소재 그리스인 정착촌과 연관된 유적지, 타폰 스프링스 그릭타운 국가등록부 지구(Tarpon Springs Greektown National Register District, 2014년 등재), 와이오밍주에서 목장과 연관된 광대한 전통문화재, 그린 리버 드리프트 캐틀 트레일(Green River Drift Cattle Trail) 그리고 미시간주의 원격지역 어퍼 페닌슐라(Upper Peninsula) 에서 한때 현지 치페와 인디언 집단의 전통적인 벼 재배지로 사용된 지역인 라이스 베이(Rice Bay, 2016년 등재)가 있다.



부족 보존 프로그램

국가등록부(National Register) 외에도 국립공원관리청(NPS) 역시 부족역사 보존 프로그램(Tribal Historic Preservation Program)의 관리를 책임지고 있다. 1990년 착수된 이 노력은 부족보존 자금조달 요구사항을 연구하고 보고하라는 의회의 지시에 따라 인디언 땅에 있는 역사적 재산과 문화전통의 보호(Protecting Historic Properties and Cultural Traditions on Indian Lands)에서 주창하였다(National Park Service: 1990). 1992년 국가역사보존법(NHPA)의 개정에 의해 뒷받침을 받는 이 프로그램은 부족역사보존사무소(Tribal Historic Preservation Office)와 부족집단을 위한 부족유산지원금(Tribal Heritage Grant)을 포함하며, 후자는 모든 인디언 부족과 알래스카, 하와이 원주민을 위해 책정된다. 이 이니셔티브와 관련이 있는 것은 다시 국립공원관리청의 후원 하에 태평양제도를 위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기회이다. 다양한 주정부 및 연방정부 소속기관 직원들이 이니셔티브를 지지하는 것과 열심히 일하는 것은 유산 보존의 어두운 전망 속에서 점점 밝게 빛나는 점들이다.

부족역사보존사무소 프로그램은 인디언보호구역 또는 부족신탁 토지가 있으며 연방 차원에서 인정을 받는 인디언 부족으로 제한 된다. 부족역사보존사무소(Tribal Historic Preservation Office)는 일단 승인되면 역사적, 문화적 재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연방과업을 검토할 수 있는 권리와 주요 유적지 목록을 유지관리하고 추가 유적지를 국가등록부(National Register)에 추가되도록 해야 할 책임을 비롯하여 주역사보존사무소(State Historic Preservation Office)와 동일한 책무를 떠맡는다. 부족유산지원금은 모든 인디언 부족과 알래스카, 하와이 원주민들을 위해 책정되며 부족역사보존사무소의 감독을 받을 필요가 없다. 이것은 역사보존기금(Historic Preservation Fund)에서 2년간 지급하는 지원금이며 문화자원의 식별, 등재된 재산의 보존, 종합적인 기획, 구전역사 및 문서화 노력, 그리고 교육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Hawkins: 2016).

1996년 미국 내무부장관은 12개 부족을 부족의 땅에서 부족 역사보존사무소의 책무를 떠맡을 자격이 있다고 승인하였다. 이 수는 2012년에 이르러서 140개가 되었다. 비록 조달금액이 보조를 맞추지 못했지만 다수의 미국 원주민 단체는 현재 역사보존 목적으로 조달자금을 받고 있다. 2013년 현재 연간 조달자금은 당시 142개 부족역사보존사무소의 경우 7,867,323달러였으며, 그 해 평균 약 52,000달러였다. (합동자금을 수령한 부족수가 줄어든 1999년의 평균은 약 72,000달러였다.) 2016년에는 조달자금이 157개 부족 역사보존사무소에 분배되었고, 9,780,208달러로 증가하였다(National Association of Tribal Historic Preservation Officers: 2016). 최대 규모의 프로그램은 주니족과 나바호족의 프로그램이었으며, 후자는 역사 보존기금와 기타 출처로부터 연간 무려 700만 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제공받아 운영되고 있다(Hawkins: 2016).

미국 내무부는 1990년부터 부족유산 프로그램(Tribal Heritage Program) 하에서 1,700만여 달러의 지원금을 지급하여왔으며, 연간 조달금액은 보통 50~60만 달러였다. 2016년에는 16개 단체가 총 531,187달러의 지원금을 받았다. 많은 금액이 무형유산의 보존 및 해석에 집중된 주목할 만한 2016년 지급액 중에는 180마일 역사 트레일에 대한 문서화 작업을 위해 야바파이 아파치 네이션(Yavapai Apache Nation)에 지급된 14,900달러, 새로운 GIS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에 있는 테존 인디언 부족(Tejon Indian Tribe)에게 지급된 36,369달러, ‘슈가쉑(Sugar Shack)’ 문화유적지를 강조하는 해석간판을 설치하기 위해 마샨터켓 피콧 부족(Mashantucket Pequot) 에게 지급된 5,848달러, 그리고 네즈 퍼스 스토리텔링 전통을 중심 으로 하는 33개 녹음물을 전사하기 위해 아이다호에 있는 네즈 퍼스 부족(Nez Perce Tribe)에게 지급된 39,681달러가 포함되었다(National Park Service: 2016).

이 프로그램은 평균 지급액이 33,199달러로 가장 광범위한 의미에서 유산을 인정하는 쪽으로 중요한 조치를 취해왔다. 몇몇 ‘벽돌 및 모르타르’ 프로젝트도 포함되지만 이것들조차도 종종 공예기술, 전통적인 건축 과정의 기록, 원로들에게 조언 요청, 기타 등과 같은 ‘무형의’ 구성요소가 있다. 역사보존자문위원회(ACHP) 미국원주민사무소장 발레리 하우저(Valerie Hauser)가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연방정부 기관들이 인디언 부족과 하와이 원주민들에게 지고 있는 책임을 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National Park Service: 2016, p.8).



태평양제도 프로그램

국립공원관리청(NPS)은 인디언 부족과 하와이 및 알래스카 원주민들에게 지급된 지원금 외에도 태평양제도(Pacific Islands)에서 유산보전/보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국립 공원관리청(NPS)은 사모아 준주(Territory of Samoa)에서 귀중한 문화 지역과 자연지역을 ‘사모아 국립공원’의 일부로서 보호하기 위해 지역수장들과 파트너 관계를 맺었다(National Geographic Travel: 2017). 게다가 국립공원관리청(NPS)은 여러 공공 공원 및 해변 지역에서 보존작업을 착수하기 위해 토지 및 수질 보존기금 지원금 프로그램을 통해 개별 지원금을 제공하였으며, 보존작업의 일부는 학교집단과 노인들이 참여하는 작업이었다(National Park Service: 2008). 국립공원관리청(NPS)은 또한 다시 현지 젊은이들이 참여하는 고고학적 연구와 마을 어른들로부터 이야기와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위해 자금을 제공하였다(National Park Service: 2017b; Wells and Hommon: 2000). 또한 사모아인들과 북미인들이 참가하고 하와이 대학교 및 기타 여러 기관들과 맺은 협력협정 하에서 진행된 토착 식물생태 중심의 프로젝트도 있다(Ragone and Lorence: 2006).

국립공원관리청(NPS)은 미국령인 괌(Guam)과 북마리아나제도 연방(Commonwealth of the Northern Mariana Islands)에서 유사한 프로젝트에 자금을 제공하였다. 이중에는 두 장소에 있는 준주역사 보존사무소(Territorial Historic Preservation Office)를 위한 지원금과 괌과 북마리아나제도 연방의 국립공원 그리고 환경 및 유산 보존 노력에 참여하는 기타 기관들에게 지급된 개별 지원금이 포함되었다 (National Park Service: 2013). 괌에 제공되는 연간 지원금은 약 40만 달러이고 북마리아나제도 연방에 제공되는 연간 지원금도 대략 동일하다(유감스럽게도 2012년보다 감소하였다). 2016년 괌은 410,831달러를 받았고 북마리아나제도 연방은 410,831달러를 받았다 (Downer: 2017). 이 돈은 다양한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는데 사용 되는데, 일부는 전통적인 관행, 언어 및 스토리텔링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프로젝트이다[사진 5].

국립공원관리청(NPS)은 또한 집단적으로 미크로네시아 자유 연합국(Freely Associated States of Micronesia)으로 알려진 미크로 네시아연방국(Federated States of Micronesia)과 팔라우공화국(Republic of Palau) 그리고 마샬제도공화국(Republic of the Marshall Islands)을 포함한 전 미국령 국가에서도 유산 보존에 중심적으로 관여하고 있다(National Park Service: 2011). 이 세 국가들은 집단적으로 괌 및 북마리아나제도 연방과 거의 동일한 금액(약 40만 달러)을 지원받으며, 이 금액은 이들 세 개의 독립적인 섬나라와 섬나라의 여러 주에 분배된다. 프로젝트는 고고학, 수중자원, 수집품 관리, 교육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나누어진다. 이들 활동 가운데 다수는 무형유산에 초점을 맞추거나 적어도 간략히 언급한다. 예를 들면, 미크로네시아연방국의 일부인 코스래주(state of Kosrae)는 전통적인 노래와 이야기의 기록물은 물론 비디오로 촬영된 성인식의 광범위한 아카이브를 편집하였다. 유사한 프로그램들은 전 미국령 국가들의 기타 역사보존사무소에 의해 수행되어왔다. 얍주(state of Yap)는 전통적인 어살과 카누에 대한 프로젝트를 완료하였다. 두 프로 젝트는 모두 전통적인 기술의 적용은 물론 광범위한 구전역사 수집을 포함하였다(Jeffery: 2010)[사진 6].

정부가 승인한 프로젝트 및/또는 자금을 지원한 프로젝트 외 에도 비영리 민간단체, 학교 및 대학교가 후원하는 수많은 프로 그램이 있다. 괌 보존 신탁(Guam Preservation Trust)은 구전역사와 무형 유산의 보존을 포함하는 많은 프로그램을 추진하였다. 이중에는 괌의 스페인 유산의 ‘문화지도’, 파갓(Pågat)이라는 버려진 소도시의 구전역사, 그리고 수많은 문화공연이 있다(Guam Preservation Trust: 2015). 괌 대학교(University of Guam)의 미크로네시아 지역 연구센터 (MARC)는 이와 유사한 활동을 해왔다. 2009년과 2016년 사이의 기간에 수행된 활동 중에는 차모로 직조, 주택 건축 및 무용은 물론 괌의 군용지를 위한 전통문화재보고서(Traditional Cultural Property Report)의 완성과 팔라우의 야구(Baseball in Palau) 및 마리아나제도의 나병환자들(Lepers of the Mariana Islands)에 관한 작품의 발행이 있었다(MARC: 2017). 폰페이에서 미크로네시아 세미나(Micronesian Seminar)를 설립한 프란시스 헤젤 신부(Father Francis Hezel, S.J.)는 미크로네시아의 전통문화에 대해 언급하는 수십 개의 논문과 여러 권의 책을 저술하였고 또한 음악공연과 스토리텔링의 전통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도움을 주었다(Micronesia Seminar: 2010).

이 일의 많은 부분은 지금 태평양 전반의 미국령과 전 미국령 국가 전반에 걸쳐 섬의 학교에서 계속된다. 또한 일본 해외협력 자원 봉사단(JOCV)과 기타 전통관행 및 유산과 관련된 국제조직의 지원도 있었다. 예를 들면, JOCV 봉사단원들은 미크로네시아연방국과 폰 페이주가 난마돌(Nan Madol)의 거석유적을 세계유산목록(World Heritage List)에 등재하는 것을 도와주었는데, 이것은 그 유적지에 속한 구전전통의 수집과 관련된 프로젝트이다. 그들은 또한 전설, 설화, 역사적 설명, 찬양, 그리고 노래에 대한 비디오 촬영을 개시 하였다(Nagaoka: 2016).



무형문화유산의 예

미국은 복잡한 다문화국가에게서 예상할 수 있는 바와 같이 풍부한 무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문화재 가운데 일부는 오랫동안 인정되고 있고 다른 일부는 오직 최근에 확인되었다. 미국 전역에는 음악공연, 공예, 무용, 스토리텔링, 그리고 기타 미국 생활의 다양성에 대해 말해주는 문화적 표현들(특히 요리)의 민속전통이 있다. 이중 일부는 일종의 ‘공식적인 국가규범’의 일부로 인정을 받게 되었고 다른 일부는 단지 현재 기록되어 대중의 주목을 받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여러 주, 준주, 도시 및 지역들은 특히 인정을 받고 있는 민속 유산을 가지고 있다. 이중에는 하와이주, 뉴멕시코주(특히 산타페와 뉴멕시코주의 푸에블로 문화), (케이준 전통과 뉴올리언스의 문화적 으로 복잡한 혼합체가 있는)루이지애나주, 산의 주인 테네시주, 켄터 키주, 버지니아주 및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리고 푸에르토리코 및 버진아일랜드와 같은 준주가 있다. 그러나 모든 주와 준주는 전형적으로 연례공연이나 정기공연, 지속적인 매체의 주목 또는 학문적 조사를 통해 기념하는 어떤 형태의 무형문화유산이 있다.

텍사스주에는 칠리, 바베큐 쇠고기 양지머리, 타말리, 컨트리웨스턴 춤, 고등학교 풋볼, 치어리더, 송아지 로핑(과 기타 목축기술), 노래와 요들, 그리고 일반적으로 로데오가 있다. 텍사스주에는 또한 원주민 공동체와 독일계, 체코계, 폴란드계, 멕시코계, 아프리카계, ‘남부 영국계’ 등 이민자 공동체를 반영하는 독특한 전통도 있다. 작은 버몬트주는 타운미팅, 의용소방대 및 퍼레이드 등 소도시 생활과 연관된 전통이 있다. 버몬트주는 또한 사과 따기, 보존식품, 채소 및 과일 통조림, 단풍당 생산, 유제품 생산, 치즈 제조 등 과거에 오랫동안 지속해온 농업과 연관된 많은 관행은 물론 가구 및 그릇 제작, 도자기 제조, 컨트리 무용 및 민속음악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버몬트주의 유산은 아베나키 인디언 원주민, 이탈리아인, 폴란드인, 프랑스계 캐나다인, 핀란드 이민자들의 전통을 비롯한 이민자들의 복합적인 과거 및 이전 역사와 지배적인 영국인, 네덜란드인,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 정착민들의 오랜 관행 및 문화유산을 반영하고 있다(Vermont, Cultural Life: 2016)[사진 7].

다른 몇몇 주의 경우도 역시 이와 유사한 목록을 편집할 수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와 사우스캐롤라이나는 해양산업, 산림산업, 농업, 광업 및 기타 활동으로 태평양 연안 북서부 지역의 저지전통과 산지전통이 결합되어 있다. 중서부 지역조차도 아만파 및 메노파 교도들, 독일인 정착민, 영국인 정착민 등 다양한 인구와 민속음악, 농업 경연대회 및 아프리카계 음악형식이 있다. 보다 최근에는 이 장소들이 모두 라틴 아메리카계 이민자들과 아랍어를 사용하는 이민자들의 의미 있는 존재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들은 각 지역의 문화유산에 상당한 기여를 해왔다(Ohio Arts Council: 2017).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동북부, 대서양 중부, 상남부, 하남부, 남서부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현대적인’ 캘리포니아조차도 라틴 아메 리카인, 원주민, 영국계 미국인,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의 문화 전통와 기타 인정할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전통이 풍부하다.

무형유산이 가장 풍부한 장소 중 하나를 하와이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최근 크게 높아진 하와이 원주민 문화에 대한 관심을 통해 다시 활기를 띠게 된 이 도서주(island state)는 전통무용(hula, 훌라), 전통민요(mele, 멜레) 및 찬트(oli, 올리)를 부활시키고 활기차게 하기 위해 많은 일을 해왔고 주 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전통무용단들(halau, 할라우)이 있다. 하일로의 메리 모나크 페스티벌 (Merrie Monarch Festival)에서는 연례적인 공연이 행해지면서 주 전역에서 온 할라우(와 기타 현지인들)는 현지인들과 방문객들이 참석한 3일간의 행사에서 경쟁한다. 전통적인 형식의 노래 및 기타 공연예술과 마찬가지로 훌라도 역시 섬의 많은 학교에서 공연된다. 올리(Oli)는 새로운 과업을 위한 하와이 축복(pule, 퓰)과 마찬가지로 지금 많은 공공기능 속에 포함되는데, 둘 다 전통적인 관습의 중요한 부흥을 구성한다[사진 8].

하와이 부흥의 기타 측면 중에는 롱보드 서핑과 스탠드업 패들 보딩(hoe he’e nalu, 호에 헤에 날루)의 부흥을 비롯하여 전통적인 서핑기법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있다. 극히 위험스러운 고대 스포츠 헤에 홀루아(he’e holua, 용암코스 썰매)도 역시 뽕나무 껍질을 이용한 카파(kapa, 타파(tapa)로도 알려짐)의 제작, 그릇 제조, 문신(tatau, 타타우 또는 kakau, 카카우), 목각 그리고 이불 제작과 마찬가지로 부흥을 경험하였다. 후자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소개하고 하와이인 들이 자신들의 용도에 맞추어 조정한 관행이다(McGregor: 2007).

하와이제도는 하와이의 전통관행의 지속과 부흥 외에도 다수의 다른 민족집단의 전통문화와 민속유산도 포용하고 있다. 이중에는 일본과 오키나와에서 들어온 스모, 일본 및 오키나와의 북치기, 중국의 용춤, 한국과 일본에서 들어온 소년과 소녀의 날 의식, 절간의 본춤(넨부츠 민속무용에 기원을 둔 오반춤), 필리핀의 ‘돈춤’, 그리고 중국과 기타 아시아의 새해 축하 등이 있다. 하와이의 음식도 역시 다양한 민족적 출처에서 유래하고 있으며 일부 요리는 아직도 특정 문화를 반영하고 있고 다른 일부는 전체적으로 그 문화 내에서 완전히 혼합되어 있다(McDermott and Andrade: 2011)[사진 9].

전통문화의 또 다른 활발한 본거지는 미국 남서부 지역, 특히 뉴멕시코주와 주도 산타페이다. 나바조 문화와 아파치 문화의 중요한 중심지인 뉴멕시코는 또한 16세기 정착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스페인 문화의 유산이 풍부하다. (이 지역의 스페인 정착민 가운데 일부는 히스패닉 유대교의 관행을 유지하였으며 이로써 이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에 또 하나의 정보가 추가되었다.) 뉴멕시코 주민의 약 절반은 히스패닉계이고 10%는 원주민이다. 이러한 다양 성은 뉴멕시코주의 언어 및 문화적 복잡성을 가중시키며 요리, 종교, 장인정신 그리고 의식관행의 전통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뉴멕시코의 전통문화는 오랫동안 외부 방문객들을 끌어들이는 자석의 역할을 해왔다. 예술가와 작가들(특히 조지아 오키프와 D.H. 로렌스)은 이 지역의 풍경과 지방 특유의 건축 및 기타 전통에 마음이 끌렸다. 1909년 뉴멕시코 박물관을 설립한 고고학자 에드가 리 휴웨트(Edgar Lee Hewett, 1865-1946)는 도기, 바구니 제작 및 보석 제조의 지속적인 전통과 지역의 관습을 증진함으로써 산타페의 독특한 문화유산과 역사적인 스페인 도시를 둘러싼 푸에블로 유산 (Pueblo heritage)에 주의를 집중하고자 많은 일을 하였다. 오늘날 남서부인디언예술협회(Southwestern Association for Indian Arts)는 주지사의 공간(Palace of the Governors)의 아케이드에 늘어선 판매공간을 감독하고 원주민 예술가들의 작업을 강조하는 특별 행사를 후원하면서 전통공예를 영구적으로 보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Santa Fe Indian Market: 2016).

산타페는 지역 내의 역사적 건물과 건축의 전통을 60여 년 동안 보존하여 왔다. 산타페는 또한 1712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 으로 우울을 상징하는 거대한 마리오네트 인형, 조조브라(Zozobra) 태우기 연례행사와 같은 지역축제를 증진한다. 또한 피에스타 엔트 라다(Fiesta Entrada, 산타페 창설의 재현)라는 성도의 축제일 홀리위크 (Holy Week)가 있고 아울러 이 지역의 독특한 요리를 포함하여 산타페와 뉴멕시코의 전통에 초점을 맞춘 보다 최근의 수많은 활동들도 있다(Santa Fe Selection: 2016).

그러나 전통적인 문화유산의 또 하나의 예로는 루이지애나주와 이 주의 주요 도시 뉴올리언스가 있다. 프랑스계 및 스페인계 유산 으로 미국의 주 가운데 특이한 루이지애나주는 유럽계 정착민 계층 및 최근 아시아계(대부분 베트남인) 이민자 계층과 혼합된 프랑스 문화, 스페인 문화, 미국 원주민 문화 및 아프리카 문화의 요소들을 포함하는 강력히 다문화적인 측면을 유지하고 있다. 뉴올리언스는 혁명 이후 아이티인 이민의 독특한 장소였으며 또한 18세기 카리브 해에서 이주하는 세파르디 유대인들에게도 중요한 장소였다. 1803년 미국에 의해 매입된 루이지애나주는 케이준(Cajun)으로도 불리는 아카디아 주민들(Acadian inhabitants)의 농촌 문화권을 비롯하여 프랑스어 및 크리올어 유산의 여러 측면을 유지하고 있다. 프랑 스어와 크리올어는 루이지애나주의 여러 지역에서 아직도 사용되는 구어이다.

이 다양한 문화적 구성은 아직도 활발한 축제, 관행, 공예 및 여러 가지 표현방식을 뒷받침하는 것은 물론 루이지애나의 음악적, 문학적, 요리 전통에 독특한 기여를 해왔다. 루이지애나는 천주교와 다양한 형태의 개신교 그리고 다양한 크리올어 표현(가장 유명한 것은 주술)을 비롯한 다수의 독특한 종교적 전통의 본고장이다. 뉴올리언스는 재즈의 발생지이며 또한 여러 가지 형식의 블루스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자이데코(zydeco)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남부 루이지애나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연관이 있는 음악형식이다. 아카디아인들은 집단적으로 ‘케이준 음악’으로 불리는 자체적인 음악전통을 가지고 있다. 또한 복음음악도 있다[사진 10].

음식의 경우, 루이지애나주의 뉴올리언스와 주변 지역은 아프 리카계 뿌리와 미국 원주민계 뿌리 그리고 스페인 및 프랑스계 뿌리에 기반을 둔 독특한 크리올식 전통을 포용하고 있다. 검보, 에투페, 잠발라야, 머플레타, 포보이, 프랄린 및 고구마 파이와 같은 디저트와 마찬가지로 남부 루이지애나와 연관된 음식이다. 축제로는 (뉴올리언스와 기타 여러 장소에서 열리는) 마디그라(Mardi Gras)와 수많은 음악축제 그리고 여러 가지 연례적인 민속모임이 있다. 또한 무용, (마디그라를 포함한)퍼레이드, 장례, 그리고 훨씬 더 많은 것으로서 함께 결합되어 루이지애나주와 뉴올리언스를 민속예술 축하행사를 위한 풍요로운 지역으로 만드는 모든 것들의 유산도 있다. 재즈 음악가 윈튼 마살리스(Wynton Marsalis)는 뉴올리언스 사투리를 흉내내면서


“이봐, 저기 아래 그들은 자네가 믿지 못할 것들을 가지고 있네... 도시인데, 그들은 요리가 있네, 그들은 건축이 있네, 그들은 음악이 있네...”라고 선언하였다(Wynton Marsalis: 2010).

간단히 말해서 ‘무형유산’에 대한 정의에 적합한 것들이 많이 있다.


국가 프로그램에 대한 조치

미국은 이 나라의 무형문화유산에 비해 오랫동안 높은 수준의 자원동원력을 증명하여왔다. 이것은 직접적인 정부지원, 의회도서관 및 스미소니언 협회와 같은 정부기관의 이니셔티브, 그리고 관광 위원회부터 비영리단체까지 다양한 유형의 지역단체의 지원 등 여러가지 형태를 취했다. 미국의 현 정부로부터 자금지원을 줄이거나 없애겠다는 위협을 받고 있는 이 단체들은 이 나라의 비물질적인 유산을 진흥하고 해석하는 어려운 일을 많이 하고 있다. 미국이 무형유산에 대한 제도적 관여를 오랫동안 해왔다는 초기 주장으로 되돌아가서 말하자면, 이 설명적 개요는 단지 정부기관과 비영리단체 그리고 무형유산에 대한 어느 수준의 헌신적 노력과 이해를 보여준 프로그램의 견본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노력은 유산관행을 위한 혁신적인 자금조달 수단을 통한 무형유산의 문서화 및 기록(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노력)부터 복잡한 다문화 환경에서 무형유산을 재고하고 재평가하는 방안까지 다양 하였다. 이것들은 단일 세대에서 쉽게 재현할 수 있는 헌신적인 노력이 아니다. 게다가 미국의 제도적 장치는 현재 미국의 관습의 가치에 전반적으로 기여하는 높은 수준의 경험과 지식을 갖춘 사람 들이 포진하고 있다. 가장 끈기 있게 지지하는 단체들은 주 소속 및 지방 소속 예술 및 인문 단체였다. 종종 적어도 부분적으로 연방정부로부터 자금이 지원되는 이 단체들은 유네스코 협약(UNESCO Convention)의 정신과 본질을 거의 지지하게 되었다. 전형적으로 주 소속 단체들의 직원 들은 전통문화와 무형유산에 대한 트렌드와 접근방법을 상세히 이해 하고 있다. 많은 직원들이 관리에 대한 교육과 예술관리의 비교적 두드러진 측면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문화학 및 민속학과 같은 여러 분야의 출신이며, 다수는 보다 광범위한 예술 및 문화 공동체에 공헌하는 구성원들이기도 하다.

국립공원관리청 및 스미소니언 협회와 같은 국가 프로그램 관리기관에 대해서도 확실히 이와 똑같이 말할 수 있다. 문화유산에 강력한 배경을 둔 전문가들로 구성된 이들 단체의 직원들은 예술의 해석과 증진의 모든 수준에서 발전현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있다. 여기에는 그들이 종종 공헌해왔던 국제적인 이니셔티브가 포함된다.

미국이 사실 다시 한 번 참여할 입장에 있는 경우 무형유산 보호를 위한 협약 하에서 어떤 종류의 무형자산을 지정할 수 있는지 아는 것은 어렵다. 미국은 분명히 다양한 유산을 가진 복잡한 나라 이다. 스미소니언과 국립공원관리청(NPS)의 노력은 항상 소수민족의 문화생산과 원주민, 농촌 사람들, 확실히 아프리카계 미국인 등 미국 사회에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소외된 계층에 의한 문화생산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표현들은 집단적 으로 ‘일종’의 국가적 그림을 형성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인정될 수 있는 종류의 무형유산과는 전체적으로 상당히 다르다. 가부키(Kabuki) 또는 분라쿠(Bunraku), 스모(Sumo) 또는 노(Noh)는 분명히 전통 공연예술에 대한 인정된 규범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국가적인’ 문화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블루그래스 음악과 훌라 공연 그리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스토리텔링은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에 의해 ‘민속문화’로 간주되고 평가되는 공연예술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미국의 문화유산에 대한 규범적 표현이 결코 아니다. 미국 요리도 마찬가지다. 풍부하고 다양하지만 성격상 ‘국가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미국의 경험은 무형유산을 보호하는 과업에 복잡성 의식을 확실히 추가하고 있다. 전통적인 예술과 공연의 보존에 관련된 사람들, 예술가들, 공연자들은 모두 경험과 예술적 탁월성의 풍부한 유산을 제공한다. 미국의 문화 관리자들과 예술원 회원들도 문화 보호 및 진흥의 명분에 유의미한 렌즈를 갖다 댄다. 미국의 현재 입장 때문에 무형유산에 대한 유네스코 협약을 통해 전통적인 문화표현을 인정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에 더욱 많이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은 수치이다. 단지 향후 이것이 바뀔 것으로 희망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