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 : 조나단 파케트(Jonathan Paquette) , 디왕(Di Wang)
Year : 2019
2012년에서 2015년 사이에는 또 다른 차원의 윤리적 문제들과 다양한 일련의 이슈와 질문들에 관심이 집중되었는데, 이때 많은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들은 무형문화유산의 보호 과정과 관련된 잠재적인 윤리적 문제에 목소리를 높였다. 무형문화재 보호협약은 문화에 대한 전문적이고 집단적인 의무와 무형유산의 미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협약 성립 후 10여 년 만에 벌어진 후속 논쟁은 공동체의 중요성을 불러일으켰다. 이 논쟁은, 유해하다고 보일 수 있는 사회적 관습의 위치와 그것들이 체계적으로 보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대표적이고 포괄적인 무형유산에 대해 인식하는 것의 중요성을 제고했다. 이러한 논쟁 들은 또한 문화투어에 대한 유사한 논쟁과 맞물려, 무형유산의 상품 화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Kirschenblatt-Gimblett: 1998; McIntosh and Prentice: 1999; Du Cros: 2001; Trinh and Ryan: 2016).
전문가들은 무형유산의 보호와 관련된 민속화와 상품화의 위험성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다. 즉, 무형유산의 윤리적 틀과 관점의 의미를 더욱 깊이 조사하는 것은 모든 사회 계층의 관점에서 무형유산이 포괄적이고 대표적이며 접근 가능한지에 관한 일련의 문제들 또한 조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는 많은 문화적 관습들은 전통적으로 엘리트들이나 지배계급들과 관련되어왔다. 그리고 현대의 관습들은 가파른 학습 곡선이 동반되는 지식을 필요로 하거나 소수만이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 압박으로부터의 독립을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것 들이 모든 무형문화유산과 관련된 문화적 관습에 해당되는 사항들은 아니지만, 유네스코 대표관행목록(UNESCO List of Representative Practices)이나 위험에 처한 유산으로 최근 지정된 것들을 언뜻 보기 보다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본 연구를 통해, 특수한 관습들이 혹시 모를 엘리트주의에 대하여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 하는 것이 아니며,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 지정 과정에 대한 비판을 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본 연구의 의도는 유명한 무형문화 유산의 역할과 위치와 연관한 무형문화유산 보호 관행에 대한 본질적이고 필연적인 질문을 위해 어떠한 것이 받아들여져야 하는 지에 대한 것이다. 특히, 본 논문은 무형문화유산과 그것의 보호에 대해 생각할 때에 대중적인 무형문화유산들도 고려가 되어야 하는 지에 대한 논거를 다루고 있다. 계급인지 및 통합 역시도 의사소통 전략을 설계하는 것뿐만 아니라 무형문화유산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사회와 큰 울림이 있는 것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고려되어야 한다.
이 논문은 포함과 접근성 문제를 더욱 다루기 위해 홍콩의 무형 문화유산의 경우를 논하고자 한다. 홍콩 특별행정구(HKSAR)는 뚜렷 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홍콩은 많은 문명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으며, 세계 각지의 이주민들을 환영해 온 다문화 지역이다. 홍콩은 세계 금융시장과 경제적 풍족함과 연관이 있지만, 사회적 계층화는 이 지역의 주요한 특징이며, 인구의 상당 부분이 경제적 상황이 넉넉치 않은 계층의 사람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공주택은 필수적인 집합적 성취가 되었는데, 그것은 초기 소유지에서 삶의 문화적 경험을 전달하고 홍콩 시민들에게 많은 중요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긴 역사를 가진 것이다.
이 논문의 첫 부분에서 홍콩 유산의 상황을 다루고, 조금 특별한 행정지역의 문화적 현실에 대한 부분은 조금 더 상세하게 다루도록 하겠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공공주택에 대한 경험과 기억,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홍콩의 박물관 및 기록 보관 작업의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절에서는 공공주택과 관련한 경험과 관련하여, 무형유산의 '서술화(narrativization)' 즉 함축적 의미에 대해 논할 것이다. 게다가, 이 부분에서는 드러나 있는 공공주택의 추억을 전시하는 지역문화의 발전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공공주택에 대한 기억은 홍콩의 여러 문화유산 기관에 걸쳐 분산되어 있는 무형유산의 형태를 보존하고 촉진하는 방법을 구성해준다. 이를 바탕으로 본 논문의 제3부에서는 무형유산 '과정'의 윤리에 대한 몇 가지 측면을 논할 것이다. 특히 대중적인 유산을 표명하는 것과 전달하는 것의 복잡함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이 논문에서 대중적인 유산이라 함은 초라한 사회적 뿌리를 가진 사람 들과 연관된 유산(유형 또는 무형의 유산)을 의미한다. 대중적인 유산 (또는 대중적인 무형유산)에는 일정한 정도의 도전 요소들이 따른다.
물론, 무형문화유산의 대부분은 정의상, 공동체 기반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유명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논문은 흔히 무형유산으로 쉽게 정의되는 활동(전통적 관습과 민속적 관행)이 처음에 보이는 것처럼 계층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유네스코 목록에 등재되어 있는 오르간 장인정신과 음악, 많은 공예품 그리고 많은 형태의 종교의식과 같은 품목들은, 때때로 그러한 무형 유산 관행에 관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부분과 연관되어 있다. 무형문화유산의 일부 품목은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없는 자원, 시간, 기술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이것들은 모두 보존할 필요가 있고 가치가 있는 무형유산의 중요한 항목 들이다. 여기서의 주장은 몇몇 형태의 문화적 관습은 사회적 지위와 연관되어 있거나 아니면 대부분의 개인이 쉽게 이용할 수 없는 재정적, 사회적 자원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논문은 무형유산의 사회적 포괄성에 대해 토론하기 위한 초청과도 같다. 우리는 대중적인 무형문화유산을 대중문화라는 개념과 함께 일정한 실천적인 연속선상에서 바라보기를 바란다. 대중무형문화재(PICH)의 개념은 여러 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내포 하고 있다. 첫째, 그것은 전통과 만들어져가고 있는 삶의 방식에 바탕을 둔 무형유산의 한 형태다. 이 유산은 구전되는 관습과 구전 역사에서 구체화되어 있으며, 산업사회와 후기 산업사회에 대한 문화적 반응으로써 나타나는 전통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의 한 부분이다. 대중적인 무형유산은 선대로부터의 전래는 아닐지도 모르 지만 이것은 충분히 전통적이다. 둘째로, 대중적인 무형문화유산은 접근이 용이하다. 대중적인 무형문화유산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자원 이나 특정 조건의 명령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셋째, 대중 무형유산은 보다 초라한 생활방식과 연관되어 있으며, 유산 전문가들이 그것을 합법화하기 위한 특별한 노력이 요구된다. 유산 전문가들은 경험과 그들의 무형문화유산의 가치에 대한 지역사회의 신뢰를 쌓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하며, 기존의 또는 새로운 제도에서 대중적인 무형 문화유산의 가치평가와 보존을 위한 전략도 개발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1976년에 유물과 기념품 조례와 사무실이 형성 되었다. 첫째, 구청장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최전방의 식민지 관리자 들이 문화적인 공예품들을 접했을 때, 그들의 일을 지도할 분명한 도구를 갖는데 열정적이었다. 둘째, 새로운 세대의 정치인들이 정권을 잡고 새로운 제도적, 정치적 공간을 이용하여 홍콩의 진보적이고 창의적인 결정과 정책을 만들었다. 특히 1950년대와 1960년대 말의 심각한 사회적 불안과 시위 이후, 인구와 식민지 행정 사이의 관계를 완화하기 위한 시도로, 새로운 통치 기구인 도시 위원회(the Urban Council)가 만들어졌고, 사람들의 요구에 보다 많이 대응하기 위한 시도로 많은 정책 권한을 부여받았다. 도시위원회는 유산법 제정과 홍콩의 유산 정책에 가속을 붙였다. 또한 도시 위원회는 홍콩의 공적으로 지원받는 박물관 시스템을 발전시킨 정치적 기관이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홍콩의 박물관 현장은 1970년대 초반에는 비교적 개발이 덜 되었다. 그러나 이 단체는 홍콩을 세계적인 문화의 선두자로서 인정받게 만들기 위한 열망을 가지고, 1980년대에 우주박물관, 과학박물관, 그리고 새로운 미술 역사박물관의 창립을 이끌어낸 특수대책위원회(Task Force)를 만들어냈다(Urban Council: 1982 and 1986). 즉, 도시위원회는 문화 유산의 보존과 진흥/소통의 촉매제였다(Paquette: 2019).
말하자면, 홍콩에서는 전 세계 많은 곳에서 그렇듯이, 보존을 위한 노력이 전형적으로 문화적인 물건과 이미 지어져 있는 유산에 집중되어 왔다. 다시 말해,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왜 유산이 유형 문화자산과 밀접하게 연관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지역 정치인과 행정가들이 보호수단과 기관을 개발하는 주요 촉매제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의 대부분의 전문지식은 유산에 대한 서구의 관점에 의해 알려졌다. 여러 해 동안, 유물과 기념물 조례(Antiquities and Monuments Ordinance)의 집행은 서구적 가치와 일치하고 식민지 유산의 보존을 목표로 하는 결정을 내려왔다. 흥미 롭게도 식민지 행정의 상징이자 1941년의 무자비한 일본의 침략을 상기시키는 머레이 하우스(Murray House)와 같은 유산을 보존하는 것에 대한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지 못한 일부 식민지 건설 유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공공 부문의 노력과 막대한 비용을 들여 보호되었다(Yung and Chan: 2011). 둘째, 홍콩의 토지 가치와 토지 부족은 역사적 보존을 위한 분명한 눈에 띄는 도전이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 건설된 유산은 당연히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다.
무형유산에 대한 문제는 적어도 암묵적으로는 중요한 문제였다. 1950년대부터 홍콩은 문화적인 체험이 풍부한 터전으로 묘사되어 왔으며, 문화관광의 풍부한 행선지로 알려져 왔다(Henderson: 2001; Li: 2003). 그러나 무형의 유산에 대한 보다 양심적이고 지속 가능한 접근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영토를 통일한 이후, 10년 만에 구체화 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여가문화서비스부(Leisure and Cultural Service Department)는 홍콩 무형유산의 진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Cheung: 2011). 중화인민공화국이 무형문화재 보호를 위한 협약을 비준하고 홍콩특별행정구(HKSAR) 정부 또한 그 협약을 인정함에 따라, 여가문화서비스부는 2006년에 특별 단위체를 설립했다. 홍콩 무형유산의 부흥과 보존을 위한 노력은 2015년에 이 부서가 홍콩의 무형유산의 목록을 만들기 위해 해당 관계자 및 전문가와 협의하면서 끝을 맺었다. 이 목록에는 현재 광둥어, 학카 방언, 푸저우 방언(언어), 많은 혈통과 일족 및 조상의 이야기, 춤, 허브차, 밀크차, 그리고 더 많은 문화재를 포함한 480개의 지역 무형 유산이 포함되어 있다. 무형문화재청(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fice)은 또한 삼동옥 박물관(Sam Tung Uk Museum)과의 협력 하에 설립되어, 무형유산 홍보를 목적으로 하는 행사 및 활동에 대한 공간 및 조직적 지원을 제공하였다.
협약과 관련된 결과를 넘어서, 홍콩에서는 무형유산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는 다른 시도들이 있었다. 1990년대 후반 유형무형유산을 잇는 문화여행 일정 및 문화유적 탐방로(Cheung: 1999)를 개발, 추진하여, 유물과 기념물 관청, 구역 행정청 그리고 여가문화 서비스부 등과의 특별한 협력기회를 제공하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마도 2000년 사톈(Sha Tin) 지역에 홍콩유산박물관을 건립한 것이다. 이는 의심의 여지없이, 홍콩의 무형문화유산의 보존과 진흥에 있어 초기적이지만 강력한 약속이었다. 박물관은 전통 공예와 관행을 바탕으로 한 풍부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으며, 또한 현대적이고 대중적인 문화를 위한 활동과 전시에도 상당한 공간을 할애하여 제공하고 있다. 홍콩문화유산박물관은 서예, 홍콩 영화, 현대 디자인, 그리고 북방영토의 전통적인 구전 역사에도 동일하게 전념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철학은 무형유산에 대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일부 편견에 저항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형유산은 민속 적일 필요가 없다. 그것은 현대적이고, 접근 가능하며, 대중적이며 진화할 수 있다. 홍콩의 정체성은 표현하기 어려운 개념이자 구성 이다(Veg: 2007). 그렇다 할지라도, 최근 역사의 많은 요소들 즉, 많은 대중적인 관습들이 홍콩에서 세계를 위한 독특한 경험을 만들어 냈고, 또한 지역 주민들의 정체성을 형성했다(Cheung: 2003; Lu: 2009; Leung and Soyez: 2009; Chen and Szeto: 2015). 예를 들어, 스타 페리 라인(Star Ferry Line)을 통해 카오룽(Kowloon) 지역과 홍콩섬 사이를 오가는 여객선은 매우 일반적인 집단 경험을 통해, 지역 정체성을 형성해내는 간단한 인기 상품의 본보기이다(Henderson: 2008; Chai: 2009; Ku: 2012). 무형유산은 또한 집단적이고, 접근성이 높으며, 또한 때로는 세계의 뿌리깊고 암묵적인 경험에 관한 것이다. 무형유산 보존과 홍보를 위한 과제는 전체적으로 완전히 기술되어 있지 않은 윤곽의 경험과 묘사를 식별하고 인지하는 것이다.
무형의 유산으로서의 공공주택 경험의 중요성을 더욱 잘 이해 하기 위해서는 첫째, 이 프로그램의 규모와 그것이 사회와 사회적 구조에 미치는 영향, 둘째로 홍콩과 지역 정체성에 대한 이 사회적 특성의 중요성이며, 이 두 가지 요소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홍콩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공공주택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2016년에 홍콩주택공사는 홍콩 인구의 46%에게 공공보조 지원금으로 주택을 직접 공급했다. 처음 30년 동안, 공공 프로그램은 홍콩 인구를 위한 534,000개의 주택 단위를 만들어냈다(Castells: 1986). 오늘날, 이 프로그램은 계속해서 새로운 공공 주택을 생산하지만 증가하는 수요를 간신히 충족시키고 있다. 2013년 특별회계감사에서 22만 8,000가구가 자격조건 충족 대상이고, 공공택지 수령 대기자 명단에 올라있다는 사실이 알려 졌다(Audit Commission: 2013, v). 이 프로그램의 기원은 1953년 12월 24일 발발한 섹깁메이(Shek Kip Mei) 화재와 관련이 있는데, 이 화재로 인해 크리스마스 하룻밤 사이에 53,000명의 사람들이 집을 잃었다. 일부 저자들은 이 순간이 프로그램을 위해 '신화적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말하고 있으며(Smart: 1989 and 2006), 다른 이들은 홍콩 정부가 공공 주택에 기울인 노력의 근본이 토지 정리 및 토지 가치가 낮거나 개발을 위한 전략적 가치가 떨어지는 지역으로 인구를 이동시키려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Lam: 2015; Lau and Murie: 2017).
이 논쟁 외에도 또한 정책 뒤에 숨겨진 의도를 넘어, 공공주택은 홍콩 생활방식의 독특한 특징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홍콩 사회에서 공공주택 역할의 중요성은 아마도 싱가포르의 사회적 구조 내에서의 중요성과 일치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특히, 브라질과 중국 본토 등 많은 중요한 공공주택 프로그램이 있지만, 홍콩과 싱가포르를 대상으로 하는 공공주택 프로그램은 가난한 시민들뿐만 아니라 중산층으로 여겨질 수 있는 개인들을 위한 프로젝트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이들 정책의 대상은 유럽이나 미주 지역에서 보여지는 대상보다 더 포괄적이다. 이 정책은 인구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홍콩의 풍경과 홍콩의 시각적인 문화를 형성하였다. 서로 다른 세대의 공공주택 프로젝트와 그 건축물들 (Mark I, II, III, Cruciform, H-Block, Double H Block, Trident, Harmony 등)[사진 1 참조]은 모두 홍콩 풍경의 일부분이며, 건축유산과 시각 문화 측면에서 볼 수 있는 사회문화적 구조물이다.
둘째, 이러한 사회적, 문화적 공간의 구축된 유산을 보존하려는 노력도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초기의 토지에서 일상생활과 관련된 경험, 사회적 관행, 가치 등을 기록하려는 유사한 노력과 병행되었다. 공공주택은 그것이 영구적이든 혹은 때때로 행해지든, 거의 모든 문화기관이 그 지역 내의 이러한 문화현상에 관여할 정도로 공공의 중요성을 지닌 항목을 구성한다. 그래서 다양한 전시와 기관을 통해, 현존하는 공공주택을 무형유산으로써 전시하는 문화가 있다. 이 지역의 가장 중요한 역사 및 인류학 박물관인 홍콩역사박물관에서, 공공 주택은 이 박물관의 영구적으로 행해지는 전시 중 하나인 홍콩이야기(Hong Kong Story)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사진 2 참조]. 이 박물관은 홍콩 사회를 위한 프로 그램의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분위기를 재현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 분위기라 함은, 이 지역 에서 살았던 수수한 삶의 경험과 관련된 심미적인 감정들을 포함 한다(Golding: 2013; Kidd: 2015). 박물관은 또한 이 집에 살았던 거주자들을 위한 새로운 삶과 관련된 유대감과 가치를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마찬가지로, 2002년에 홍콩주택청은 자체 박물관을 설립했다. 당국은 홍콩 공공주택 건축의 발전을 그린 전시회를 개발하였으며[사진 3], 공공주택 입주자들의 삶의 방식과 입주자 들의 일상생활에 주택당국이 미치는 영향을 다소 낭만적으로 보여주며, 이들 단위체들 중 한 곳의 대표적인 내부[사진 4]를 전시 했다. 인테리어는 일반적인 대상과 사회적 관행을 보여준다. 방문객은 이제 다른 시대에 속하는 이러한 공간에서, 사회적 관습을 상상하고 기억하도록 이끌어진다. 라디오, 차, 찬장, 옷걸이에 달린 옷 등은 모두 가정생활을 연상시킨다. 많은 다른 기관들은 초기 토지의 삶에 존경을 표한다. 홍콩유산발굴센터(Hong Kong Heritage Discovery Centre)와 홍콩유산박물관(Hong Kong Heritage Museum)에도 이와 유사한 전시품과 아이템들이 전시되어 있다.
요약하자면, 공공 주택 전시는 분명히 홍콩 유산 전문가 및 기관들이 다루는 데 익숙한 주제이자 구성 요소이다. 이러한 요소들 중 일부는 건설된 유산의 가치를 나타내지만, 전시품들은 또한 인구의 중요한 계층이 사는 삶의 방식에 관한 무형적 차원을 입증 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전시회에서 공공주택의 생활방식을 보여주는 주요 순간 중 하나는 2004년 공공주택 프로그램 50주년 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한 일련의 공공행사에서 찾을 수 있다. 기념의 일환으로, 여가문화 서비스부는 홍콩문화박물관 및 홍콩 주택 당국과 공동으로 이 전시회인 '집의 추억(Memories of Home)'을 기획했다. 이는 섹깁메이 (Shek Kip Mei) 화재로 인한 비극뿐만 아니라 홍콩의 공공주택 역사를 재평가하기 위해서 2004년 6월 2일부터 10월 11일에 걸쳐 이루어 졌다. 이 전시회의 인기와 그것의 사회적 관련성은 홍콩주택청이 주최하는 온라인 보관소를 통해 자료의 일부를 소유하는데 있어 인가받았는데, 대부분 여전히 온라인을 통해 접속할 수 있다. 서술적 관점에서, 이 전시회는 공공주택 프로그램에 관한 중요한 사회적 사실들 중 한 가지에 대한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즉 이 전시회는 이 프로그램이 홍콩 이주 역사의 얼마나 큰 부분인지를 보여주었다. 섹깁메이(Shek Kip Mei) 화재를 촉매제로 보는 한편, 궁극적으로는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사회정책이 된 재정착 프로 젝트를 만들어내게 된 전환점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지만, 프로 그램의 오랜 역사 역시 이주의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중국 본토와 동남아시아에서 온 많은 이주민들에게 집을 제공하는 규제받지 않는 빈민지역의 공동주택은 전형적으로 '불법거주건물' 이라고 불린다. 공공주택 프로그램은 이 세대에서 이미 정착하여 살고 있던 이주민들과 홍콩 거주자들에게 더 나은 생활환경을 제공 하는 한 방법이 되었다. 홍콩유산박물관에서 열린 공공주택 전시 회는 또한 이 지역에서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개인들 간의 만남을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이 전시회는 현재의 사건들과 정책과 관련된 맥락과 역사적인 요소들을 재결합시키고, 살아있는 경험을 가지고 이 사람들을 맞물리게 만들어 주었다. 이 전시회는 홍콩의 역사에 있어 중요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인생의 경험과 개인 들의 추억과 기억을 통해 사회 정책의 역사를 보완해냈다. 약 10년 후, 유물 및 기념품사무소(Antiquities and Monuments Office)는 2013년 9월부터 2014년 3월 사이에 카오룽 공원(Kowloon Park)의 홍콩 헤리티지 디스커버리 센터(Hong Kong Heritage Discovery Centre)에서 개최된 공공주택의 '그로잉 업(Growing Up)'이라 불리는 또 다른 중요한 임시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 전시회는 많은 사진과 물건, 역사적인 패널을 보여주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전시회가 공공 토지에서의 삶의 경험을 설명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되는 많은 개인 적인 서술들을 통합했다는 것이다.
2013년은 홍콩의 유형 및 무형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또 다른 중요한 프로젝트의 해이기도 했다. 수년간의 논의와 계획 끝에, 1954년 제2급 유산 현장으로 선포된 공공재산인 메이호 하우스(Mei Ho House)는 유스호스텔협회(Youth Hostel Association)가 주도한 민관 합작 사업의 일환으로 재설립되었다. 이 건물은 유스호스텔로 용도 변경되어 여행객들에게 저렴한 숙박시설로써 제공되었고, 일부 부지는 박물관으로 만들어졌다. 무형유산은 이 박물관을 설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서, 그 토지의 건축적 가치를 보존할 뿐만 아니라, 이 독특한 공간 형태학에 관련된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추구를 인지하기 위함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가계들 사이에 긴밀한 유대를 형성하였다(Youth Hostel Association: 2019a). 이 박물관의 임무는 다음과 같다.
최근 몇 년 동안, 다른 공공 기관들은 공공 주택 역사에 대한 이 새로운 열정에 응답할 것을 강요받았다. 공공보존기록관(Public Records Office)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정부의 민간의료 캠페인을 가치 있게 평가하기 위한 중요한 캠페인을 만들었다. 이러한 캠페 인의 자료 중 일부는 기록보관소와 기록보관소의 웹사이트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이것은 홍콩의 유산을 소통하는 공공 보존기록관의 최근 주요한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2009년 시민부 (Department of Civic Affairs)는 정보부(Information Services Department)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를 설계하고, 소통 캠페인 회고전을 선보였다. 이러한 소통 캠페인은 겉으로 보기에 공공 주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공공 주택과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할 만큼 관련성이 높다. 많은 캠페인이 부동산에서 순환되었고, 그들 중 일부는 거주자들의 행동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겨냥했다. 핑온(Ping On)양, 랩삽충(Lap Sap Chung,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사람) 혹은 제브라(Zebra) 씨 삶 속에서 느낄 수 있는 향수는 부인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캠페인은 새로운 공공 주택 공간에 만연했던 가치와 공공 보건 및 좋은 공공 행동에 대한 집단적 분위기와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이러한 자료들에 대한 대체적인 해석은 종종 불법 거주자 로 비추어지는 공공주택 세입자들에 대한 정부의 인식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캠페인은 공공주택지 에서의 더욱 가혹한 삶의 측면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보여주기도 한다.
본 논문의 목적은 공공주택의 기억을 무형유산의 공식 목록에 포함시키는 것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며, 홍콩주택공사(Hong Kong Housing Authority)의 주택정책의 조직적 가치나 제도적 문화 또는 행정을 촉진하기 위한 것 또한 아니다. 홍콩 공공주택을 분양받기 위한 대기자 명단이 존재한다는 것에서도 드러나 있듯이, 현 상황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오히려 이 논문의 목적은 무형유산으로써의 공공주택의 기억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것이며, 홍콩 사회에 대한 공공주택의 영향력과 지역 정체성의 발현을 부각하는 데 있다. 1950 년대, 1960년대, 1970년대에 이 프로그램의 광범위한 범위로 인해, 상당 부분 인구의 일상생활과 관행에 영향을 미쳤다.
논문의 이 부분은 이러한 어떤 경험으로부터 이 논문이 '대중 적인' 무형유산이라 부르는 것을 보호하고 촉진하는 것의 복잡성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대중적으로 보면, 이 논문은 노동자 계층 인구 및 문화와 관련된 유산과 가치들의 범주를 의미한다. 이때의 대중 적이라는 단어의 개념은 다양한 계급의 분류와 계층화를 포괄적으로 의미하며, 계급 이동성을 인정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된다. 더욱이 이러한 '대중성'의 개념은 일부 사람들이 그들의 천한 출생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을 수 있지만, 여전히 그들의 삶의 경험에 대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이것이 보존할 가치가 있는 요소라는 것에 대한 이해와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대중적인 무형유산의 개념과 관련한 어려움 중 하나는 코프먼 (Kaufman, 2013년)이 종종 너무 융통성 없는 이해와 무형유산을 구성하는 것에 대한 정의로써 묘사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 코프먼에 따르면, 무형유산의 개념은 탄력적이다. 이 정의에 포함된 것에는 많은 것이 유동적이다. 일부 지역사회는 오페라에 큰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반면, 다른 지역사회는 겸손한 관습이나 공간이 더 많은 유산의 가치와 기억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pp.22-23). 이 점은 단지 이론적 목적뿐 아니라 전문적인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무형유산의 가치에 관해 공동체를 자문할 때, 대표적인 사례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으로써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무형유산의 가치에 대해 지역사회와 상담할 때, 대표자가 되기 위한 노력으로, 그들의 인생 경험을 정의하는 것에 기반을 두기보다는 무형유산의 예를 찾으려고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았는가? 이러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대중적 유산을 구성하는 것은 종종 불법적이고 표현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보잘것없는 배경에 대한 어떤 수치심과 연관될 수 있고, 또한 기념될 가치가 없거나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홍콩의 제1무형문화재 목록에는 주로 축제나 고도로 숙련된 공예활동이 포함되어 있지만, 광범위한 매력을 가질 수 있거나 보다 대중적인 배경을 가진 품목이 거의 없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 밀크 차, 야채 차, 그리고 기타 요리법 등은 대중적인 관심의 매개자이다. 등재되어 있는 항목들은 무형유산에 대한 엄격한 정의를 준수한다. 다시 한 번 핵심은 480개 항목 목록에 추가되는 것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적 유산에 참여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이다. 전문가로서, 지역사회가 제도적으로 '유산'으로 정의된 것과 동일시하도록 요구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전문가들은 퀴즈와도 같은 지역사회에게 단순히 정의에 맞는 것에 대한 플랫 폼을 제공할 뿐이다. 오히려 참여자는 자신이 그 존재와 가치를 찾아 내기 위해 고른 것을 더욱 정확히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의사 소통이 중요하며, 그들의 과거와 그들의 경험이 유산으로 지정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다룰 때는 훨씬 더 중요하다. 이것은 문제의 유산이 구체화된 경험과 세계에 대한 자신의 경험에 대한 서술적인 설명과 기억의 갈림길에 있을 때 더욱 어렵다(Ruggles and Silverman: 2009).
그러므로 대중적인 무형유산, 또한 이와 관련된 그 어떤 인기 있는 유산의 첫 번째 도전은 그것을 유산으로 인식하는 데에 존재 하는 어려움과 관련이 있다. 한편, 무형유산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중요한 잠재력을 가득 가지고 있다. 그것은 계층의 장벽을 넘어서 유산의 유형을 인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도와준다. 그러나 한편, 이러한 개념은 지나치게 기술적인 태도와 재래식 언어에 지나 치게 의존해야 할 때는 몇 가지 한계를 나타내기도 한다. 윤리적 관점에서, 전문가들은 포괄적이고 대표적이기 위해 또한 대중적인 유산을 찾아내는데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협약의 언어에 의해 강화된 지배적인 서술은 지역사회가 유산을 식별하고 지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제안 하지만, 이것이 유산 전문가들의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을 막거나, 지역사회로부터 인지되지 않을 수 있는 일부 항목의 중요 성을 강조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 암묵적인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명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무형유산에서는 필수적이며, 이것이 전문가들이 때때로 인지되지 않았거나 의심스러운 유산의 유형을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있어 도움을 줄 수 있는 영역이다.
유명한 유산은 처음부터 유산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시대를 초월하여 가치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역사회의 관심과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한 품목이 유산으로 인식되면 자부심이 생기고 무형유산이 기대되는 공동체 결속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한때 합법적인 자료로 인식되었던 공공주택에서의 삶에 대한 전시회는 그 전시회 안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던 청중들로부터 자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큰 환대를 받았다. 홍콩의 공공주택 전시회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점은 대중문화 유산에서는 '소통을 위한 대담함'이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때때로 새로운 청중이나, 자신의 (지각된) 무지가 두려워서 유산 관련 기관에 끌리지 않는 사용자들과 교류할 때에 유익하다.
마지막으로, 대중적인 유산의 관리는 굉장히 복잡하다. 대중 유산은 일반적인 사회관행, 태도, 대중문화의 아이템과 공간의 사용과 관련이 있다. 유명한 유산은 종종 음식이나 대량 소비 품목과 연관되어 있는데, 이것은 또한 종종 기업의 이익에 의해 가로막히 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인기 있는 무형유산은 과학과 기술에 초점을 맞춘 유산 기관들이 직면하는 문제와 매우 유사한 문제를 직면하기도 한다. 기업의 이익에서 더 큰 자율권을 찾는 것은 장기 적인 측면에서 지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더욱 이로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줄지도 모른다. 기업 후원자들이 중요한 보관 자료를 보유하고 있을 수 있고, 그들은 또한 무형 유산에 대해 매우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브랜드와 이미지에 있어서 다르거나 창조적이거나 그들의 체제를 전복시킬 가능성이 있거나 부정적인 언급에 관여하는 것은 더 꺼릴 수 있다. 유산 전문가들은 기업 파트너와 연계하는 데 드는 비용과 편익을 따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홍콩에서 주택 공사는 이러한 활동의 많은 중요한 후원자가 되어왔다.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에 공공주택에 대한 충분한 비판적 반성의 여지가 있었지만, 안락함에 관해서는 이 지역에서 사회주택 경험에 대해 논의하고 평가하기 위한 다른 종류의 창의적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다른 관심의 목소리가 있을 수도 있다.